가난한 백성들은 오래전부터 미꾸라지를 먹었다

미꾸라지

식자우환(識字憂患)이다. 어설프게 아는 게 차라리 모르니만 못하다. “추어탕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말한다. 정작 마지막에는 ‘나만의 추어탕’을 설명한다. ‘서울식 추어탕’ ‘호남식 추어탕’에 느닷없는 ‘원주 추어탕’도 나온다. 추어탕(鰌魚湯)과 추탕(鰍湯), 미꾸라지 튀김과 숙회(熟鱠)가 나오고, ‘통추’ ‘갈추’ ‘산초’ ‘초피’ ‘제피’가 등장하다가 마지막에는 “국산이 어딨어? 전부 중국산 양식이잖아!”로 허망하게 끝난다.

추어탕은 두 종류다. ‘한양, 서울식’이 있고, ‘농촌형 지방 추어탕’이 있다. 한양식은 붉고 화려하다. 원래는 ‘통추’였다. 농촌형은 소박하다. 붉지 않고 맑다. ‘갈추’가 원칙이다. ‘통추’는 통미꾸라지, ‘갈추’는 갈아서 쓴 것이다.

‘미꾸라지로 만든 음식’에 대한 가장 정확한 자료는 오주 이규경(1788~1856년)의 ‘오주연문장전산고’다. ‘인사편_복식류_제선(諸膳)’의 내용이다.

추두부탕(鰍豆腐湯). 계곡의 진흙, 모래가 있는 물에서 미꾸라지를 잡는다. 많이 잡으면, 물을 담은 항아리에 넣어둔다. 하루 세 번 정도 물을 갈아준다. 5~6일 정도, 미꾸라지는 진흙을 토해낸다. 토해내는 진흙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후, 솥에 물을 붓고 크게 썬 두부 몇 덩어리를 넣는다. 솥의 물속에 미꾸라지 50~60마리를 넣는다. 솥 아래에 불을 때면 솥은 점점 뜨거워진다. 미꾸라지 무리는 열을 피해 두부 속으로 들어간다. 계속 불을 때면 솥이 끓으면서 미꾸라지도 익는다. 끄집어내서 썬다. 미꾸라지는 개개의 두부 속에 콕 박혀 있다. 참기름으로 지진다. 두부 전을 먼저 끓이고 메밀가루를 섞는다. 달걀 전(지단)을 얹는다. 이렇게 탕을 끓인다. 기름기가 넉넉하고 맛이 좋다. 이 탕을 요즘 한양의 반인(泮人)들이 즐겨 먹는다.

‘곰보추탕’의 추탕. 통추다. 미꾸라지, 두부, 유부, 양지 등이 보인다.
‘곰보추탕’의 추탕. 통추다. 미꾸라지, 두부, 유부, 양지 등이 보인다.

흔히 이 내용을 추어탕에 대한 가장 상세한 자료로 이야기한다. 상세하다는 표현은 맞다. 오주가 기록한 ‘추두부탕’은 추어탕과 다르다. 추어탕은 오주의 시대에 처음 나타난 음식일까? 그렇지도 않다. 추어탕, 미꾸라지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길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고려도경)_제23권_잡속2’에 이미 미꾸라지가 등장한다.

고려 풍속에 (중략)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鰌], 전복[鰒], 조개[蚌], 진주조개[珠母], 왕새우[蝦王], 문합(文蛤), 붉은게[紫蟹], 굴[蠣房], 거북이다리[龜脚], 해조(海藻), 다시마[昆布]는 귀천 없이 잘 먹는데, 구미는 돋구어 주나 냄새가 나고 비리고 맛이 짜 오래 먹으면 싫어진다.

‘고려도경’은 1123년에 편찬한 책이다. 오주의 시대보다 700년 이상 앞선다. 위 내용에 나오는 식재료들은 대부분이 해산물이다. 바다에서 나오는 것들은 채취가 힘들다. 굴이나 다시마, 작은 게 등을 많이 먹은 것은 이런 식재료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다.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미꾸라지도 마찬가지다. 바다 생선, 해조류보다 더 구하기 쉬운 것은 미꾸라지 같은 민물 생선이다. 가난한 백성들은 강, 하천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민물 생선을 오래전부터 먹었다.

우리는 미꾸라지를 오래전부터 먹었다. 음식으로,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_율기6조_칙궁’ 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전략) 유관현(柳觀鉉)은 성품이 검약(儉約)하였다. 그는 벼슬살이할 때 성대한 음식상을 받고는, “시골의 미꾸라지찜만 못하다” 하였고, 기생의 노래를 듣고는, “논두렁의 농부 노래만도 못하다” 하였다.

양파 유관현(1692~1764년)은 경북 안동 출신이다. 양파가 지은 ‘정재종택’이 안동시 임동면에 남아 있다. 양파가 비유로 든 것이 바로 ‘성대한 음식상’과 ‘시골 미꾸라지찜’이다. ‘시골 미꾸라지찜’은 가장 소박한 음식이었다. 양파의 미꾸라지찜은 경북 안동 산일 가능성이 크다. 미꾸라지 음식은 한반도에 흔하게 있었다.

경북 예천 ‘유정식당’의 추어탕.
경북 예천 ‘유정식당’의 추어탕.

양파 유관현 뒤 시대 사람인 풍석 서유구(1764∼1845년)는 ‘난호어목지’에서 “(미꾸라지)살은 기름이 많고 살찌고 맛이 있으며 시골 사람은 이를 잡아 맑은 물에 넣어두고 진흙을 다 토하기를 기다려 죽을 끓이는데 별미”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풍석은 미꾸라지를 이추(泥鰍)라고 표기했고 한글로는 ‘밋구리’라 한다고 적었다.

오주 이규경은 ‘추두부탕’을 그렸지만, 풍석은 농촌의 미꾸라지탕 혹은 미꾸라지 죽을 언급한다. 오주와 풍석은 같은 시대 사람이다. 풍석 서유구가 약 20여 년 앞선다. 두 사람 모두 실학자였고, 서민들의 풍습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오주가 설명한 ‘추두부탕’은 오늘날 서울식 추탕으로 진화한다. 풍석이 설명한 ‘밋구리 죽’은 오늘날 지방의 추어탕과 비슷하다. 오주는 당시 한양의 풍습을, 풍석은 시골 농촌의 추어탕을 그렸다.

오주 이규경의 ‘추두부탕’은 상당히 화려하다. 이른바 ‘서울식 추어탕’의 모습이다.

‘반인’들이 즐겨 먹는다고 했다. 반인(伴人)은, 성균관에서 일하는 천민 노비다. 신분은 노비지만 조선 말기 쇠고기 독점권 등을 확보하여 막대한 부를 손에 쥔다. 반인들은 성균관 부근의 폐쇄적인 ‘반촌(泮村)’에 살며,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만든다.

성균관의 주요 기능은 교육과 공자 제사다. 공자 제사에는 반드시 귀한 쇠고기를 사용한다.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일정량의 쇠고기를 공급했다. 과거를 통하여 언젠가는 국가를 경영할 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반인 중에는 천민 백정도 있다. 이들은 대성전 제사와 성균관 유생을 위한 쇠고기 준비 등을 도맡는다. 조선 후기, 이들은 한양의 쇠고기 유통에 참여한다. 반인들은 재물을 모았다. 재료가 넉넉한 ‘추두부탕’을 즐겨 먹었던 이유다. 두부, 메밀가루, 달걀 전 등은 귀한 식재료다. 오늘날 서울의 추어탕 그중에서도 ‘통추 추어탕’이 남은 이유다. 뿌리는 역시 오주의 기록에 나오는 ‘반인들의 추두부탕’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가 발간된 100년 후. 일제강점기 경성에는 몇몇 추어탕 집이 문을 연다. ‘용금옥’ ‘형제추탕’ ‘곰보추탕’ ‘희망의집’ 등이다. ‘희망의집’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고, ‘곰보추탕’도 서너 해 전, 문을 닫았다. 1920년대 문을 연 ‘형제추탕’은 장소를 옮겨 운영 중이다. ‘용금옥’은 한 번 이사한 후, 꾸준히 영업 중이다. 1930년대 문을 연 서울의 추어탕 집들은 이제 80년의 업력을 넘겼다.

서울 추어탕은 고명이 화려하다. 문을 닫은 ‘곰보추탕’의 조명숙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추어탕에 뭐를 넣느냐?”는 질문에 조 대표는 열여섯 가지의 고명, 재료 목록을 보여줬다. 쇠고기 양지로 국물을 내고, 두부, 유부 등을 사용한다. 나물 종류도 다양했다. 달걀과 버섯 등 귀한 식재료도 넉넉하게 넣는다. 두부나 유부 등을 사용하는 것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추두부탕’과 비슷하다.

‘용금옥’의 추어튀김.
‘용금옥’의 추어튀김.

농촌 지역인 영, 호남의 추어탕은 서울식과 전혀 다르다.

대구 ‘상주식당’의 추어탕은 단순하다. 얼갈이배추 등이 고명의 전부다. 간장으로 간을 잡는다. 대부분의 농촌형 추어탕은 된장을 풀어서 사용한다. 고춧가루를 쓰는 경우도 드물다. 서울식 추어탕이 고춧가루를 넣은 붉은색의 국물이라면 농촌형 추어탕은 우거지 등 채소잎 위주의 비교적 맑은 국물이다. 반드시 초피(산초, 제피)가루를 사용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비린내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식 추어탕은 국을 끓일 때 산초 혹은 생강 등을 사용한다. 더하여 고추의 매운맛으로 비린내를 잡는다.

서울식 추어탕, ‘프리미엄 급 추어탕’은 한양의 반인들이 즐겨 먹었다. 농촌에서 미꾸라지 죽을 끓이면서 두부, 메밀가루, 달걀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준비하기는 힘들다. 육수를 내는 것도 힘들다. 논배미에서 간단하게 먹는 것은 역시 ‘미꾸라지+간단한 채소+된장’ 정도다. ‘통추’가 아니라 ‘갈추’를 선택한 것도 이유가 있다. 고명, 재료가 빈약한데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음식을 만들 수는 없다. 미꾸라지를 한번 삶은 다음, 부수면 살이 뼈에서 떨어진다. 곱게 부순 살을 모아서 국물에 넣는다. 대구 ‘상주식당’의 추어탕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이게 추어탕이야? 추어탕에 미꾸라지가 없네”라고 하는 이유다.

경북 예천의 ‘유정식당’은 변형된 농촌 추어탕이다. 색깔이 붉다. 추어탕이 아니라 미꾸라지 전골이다. 자연산 미꾸라지, 깻잎 등 채소를 넣고 푹 끓인다. ‘통추 전골’이다. ‘농촌형 추어탕’이 얼마간의 재료를 더한 ‘변형 미꾸라지 전골’로 진화했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