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최악의 전투 가운데 임팔 전투라는 것이 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일본이 기울어가는 전세를 만회하고자 한 것이다.

때는 1944년 3월부터 7월까지. 장소는 지금 미얀마에서 인도 쪽으로 넘어간 곳.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에 싱가포르를 3개월만에 함락시키는 등 영국군을 손쉽게 밀어붙인 기억이 있었다. 태평양 일대에서 미군에게 밀리고 밀리던 끝에 생각해낸 전세 역전 방법이 미얀마 쪽에서 성공을 거두자는 것이었다. 그런 연장선에서 영국군이 주둔해 있던 임팔을 공략해서 인도 쪽으로 진격해 들어가자는 발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전투는 일본군의 지옥이었을 뿐 아니라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인류에게 깨우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임팔 전투에 관해 NHK에서 만든 다큐멘터리가 있다. 중일 전쟁의 장본인으로 성공을 거둔 무다구치라는 일본 장군이 이 전투 계획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했다. 병참 부분을 고려한 어떤 보좌관이 극구 반대했지만 무다구치는 그를 전격 좌천시키면서 전투 작전을 감행했다.

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에서 임팔까지는 줄잡아 470킬로미터 정도. 폭이 600미터에 달하는 친드윈 강을 넘어 야포 같은 것을 수레에 싣고 둘러메고 산맥을 넘어가야 하는 끔찍한 행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기억이 맞다면 말이다.

보급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먹을 것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무지막지한 짓을 벌였는지 몰라도 무다구치의 병사들은 임팔에 다 가지도 못하고 식량 부족에 시달렸고 나중에는 무기들마저 짐스럽게 변해 버렸다. 내 기억에 따르면 공격을 시도하기는 했던 모양이지만 이미 영국군은 개전 초기의 영국군이 아니었다.

다큐멘터리는 3만명의 절반 이상의 병사들이 어디서 어떻게 죽어갔는지에 대한 기록을 점으로 찍어 살폈다. 이 점들은 이 전투 기간에 죽음을 당한 병사들의 절반 이상이 전투에서가 아니라 후퇴하면서 변을 당했음으로 보여준다. 추격해 오는 영국군에 쫓기던 일본군은 먹을 것이 없어 나중에는 멀쩡한 자들이 부상병을 ‘잡아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대부분의 죽어간 군인들은 일반 사병들이었고, 장교들은 그나마 식량 같은 것을 최후까지 차지한 덕택에 많이들 살아남았다고 하던가.

요즘 왜 이 임팔 전투가 자꾸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아베 같은 이들은 자기 신념에 정신 팔린 나머지 자신이 추종하는 그 군국주의 망령들이 일본 국민을 어떻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을 얼마나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게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가 벌이는 한국을 향한 ‘경제 전쟁’이라는 것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는 대일본의 재흥을 꿈꾸고 있는지 모르지만 과거를 겸허하게 성찰하지 못하고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성급히, 자신의 의지만으로 전세를 바꾸려 한다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일본의 경제적 쇠락이자 일본인들의 고통뿐일 수도 있다.

한국은 이제야말로 일본으로부터 새롭게 다시한번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에도 일본은 이 나라에 얼마나 오래 ‘빨대’를 꽂았던가. 아베의 국가는 한국에 돈을 빌려주고도 자기 것 아니면 사지 못하게 하는, 그러면서도 시혜를 베푸는 양 ‘거들먹거린’ 것이다. 이번에는 이런 ‘구조’를 어떻게든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힘이 들더라도 지금은 버텨야 할 때, 몇 푼에 자긍심을 버리지 말아야 할 때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