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광선처럼 몰입할 수 있는 한 가지 생각이 있다면, 그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내가 달라집니다. 내가 달라지면 세상이 바뀌지요. 문제는 그 레이저 광선 같은 한 줄기 생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편집자는 늘 책만 생각하는 사람, 기자는 늘 기사만 생각하는 사람, 시인이란 늘 시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작가란 오롯이 늘 어떤 글을 세상에 내 보낼까를 한 줄기 생각으로 붙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속도가 생명인 지금 이 시대에 그 한 줄기 생각을 붙들며 살기란 극도의 절제를 필요로 합니다. 자기 절제를 놓치는 순간 도도한 강물처럼 내 생각을 휩쓸어 가는 생각의 물살은 어느새 돈 걱정, 사람 걱정으로 밀려들기 마련이지요.

문학 평론가 김종철이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를 찾아가 인터뷰한 경험을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한 줄기 생각이란 것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오로지 원고료 수입만으로 살아가는 일본 순문학의 대표주자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생활비를 감당할 길이 없을 것 같아 부인과 단둘이 지냅니다. 문학을 위해 세속적인 안락을 포기하지요.

하루 일과도 규칙적입니다.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체력을 관리합니다. 체중이 늘면 머리가 둔해지기 때문에 저녁은 먹지 않습니다. 물론 술과 담배 커피도 마시지 않습니다. 언론과 연락을 끊고 살지요. 그의 집은 논 한가운데 덩그러니 섬처럼 고립되어 있습니다.

김종철은 마루야마 겐지에게 묻습니다. “늘 삭발을 하고 계신데요, 혹시 이유가 있으신지요?” “쉰 살 생일 아침에 문득 거울을 보니 문학에 대한 각오가 자꾸만 느슨해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머리를 깎았어요. 그날부터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면도칼로 머리카락을 밀며 흐트러진 마음을 잡습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은 몸으로 쓰는 것’이라 말합니다. 자신의 몸이 곧 붓이자 펜인 겁니다. 언제나 최상의 소설을 쓰기 위해 최상의 몸, 최상의 컨디션을 확보하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그의 빼어난 문장과 상상력은 매일 아침 면도날로 자신의 머리를 밀며 구도자처럼 지켜내는 깨끗한 몸에서 나옵니다. 몸을 붓 삼아, 자신 전부를 펜 삼아 언어를 남기는 사람들은 광풍처럼 우리를 ‘돈’의 세계로 몰아가고 물질이 전부라 속삭이는 이 시대정신에 마취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레이저 광선 같은 한 줄기 생각을 붙드는 이들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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