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을 시작으로 위정자들이 거듭 거론하는 ‘평화경제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권을 잡은 정부·여당은 ‘명약(名藥)’인 것처럼 팔고 있고, 비판하는 이들은 ‘독약(毒藥)’으로 여긴다. 당장 국가 경제가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도움이 되는지가 궁금 사항이다. 문 대통령의 언급 직후 북한이 ‘삶은 소대가리’라는 험구를 들먹거리며 내놓은 맹비판은 또 뭔가.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한 행사에서 “평화경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경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에서 처음 언급한데 이어 74돌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또다시 꺼내든 새로운 용어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남북 간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국민을 기만하고 현혹하는 허풍”이라는 힐난을 사는 등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또다시 “평화경제에 모든 걸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평화경제’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통한 ‘남북 경제협력’을 의미하는 것쯤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당사자인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즉각 “삶은 소 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면서 “아랫사람들이 써준 것을 그대로 졸졸 내리읽는 웃기는 사람”이라는 인신공격까지 감행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평화경제’라는 개념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경제규모를 보면 국내총생산(GDP)은 일본 5조706억 달러, 한국 1조6천556억 달러, 북한 326억 달러(추정)로 추산된다. 삼성전자의 순익보다도 작은 북한의 경제 사이즈만 보더라도 도움이 될 까닭이 없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IMF, 월드뱅크 등의 자금을 빌려 쓰려면 경제 현실에 대한 현미경 실사를 2년 이상 받아야 한다. 지난 1997년, 2000년 두 번에 걸쳐 북한은 IMF 가입 의사를 밝혔다가 “경제 실사를 시작하자”는 말에 도망가 버린 전력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재정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독일 통일에서 보듯 혹독한 시련을 치러야 한다. 동서독 통일 이후 1992년, 1993년, 1994년 서독은 1.2%. -2.3%, 1.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죽을 쑤었다. 당시 독일은 ‘유럽의 병자’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노조 임금을 동결하는 등 무려 10년간 죽음의 계곡을 헤맸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평화경제’는 우리에게 닥친 ‘경제위기’에 약(藥)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여당이 부디 실사구시의 정책으로 현실성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 국민의 시름을 덜어주기를 학수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