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일(克日)로 가는 길
극일(克日)로 가는 길
  • 등록일 2019.08.19 19:14
  • 게재일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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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반일과 친일, 항일과 극일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 논쟁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이성과 감성이 뒤섞여 있다. 게다가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겨냥해서 이 논쟁에 정치공학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는 모두 하나같이 극일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 인식과 방법에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일 경제전쟁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쟁 당사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손자병법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했다. 일본의 경제력은 세계 3위이고 한국은 11위로서 GDP가 우리의 3배를 넘는다. 인구규모·경제기반·부채 대 자산비율·첨단기술능력 등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있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이것은 강대국인 일본과 중견국인 한국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그 피해는 일본보다 우리가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불편한 진실’은 우리의 극일전략이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공영방송인 KBS 앵커가 “이 볼펜은 일제가 아닙니다”라고 하자 KBS 노조가 “공영방송으로서 경솔하고 선동적이다. 방송국에 고가의 일본 장비가 많다고는 왜 밝히지 않는가”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서울 중구청이 1천100개의 ‘No Japan’이라는 반일 현수막을 걸자 시민들은 구청이 주도하는 감정적 반일운동의 부적절성을 강력히 비판함으로써 바로 철거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극일은 말이나 선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반일의 가슴’은 뜨거워도 ‘극일의 머리’는 냉철해야 한다.

‘극일’은 ‘과거의 시제(時制)가 아니라 미래의 시제’이다. 따라서 극일의 올바른 방향은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미래전략의 모색이어야 한다. 우리가 ‘일본이 자행한 과거사’를 문제삼은데 대해서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의 미래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역사는 국제분쟁에서 승리한 나라는 언제나 미래를 먼저 준비했던 강대국이었음을 가르쳐 준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매우 비현실적인 환상을 주장하고 있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단숨에 일본을 이긴다는 발상은 놀라울 뿐이다. 정부는 이념이 아니라 실용의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첨단기술력을 배양함으로써 ‘아름다운 보복’을 준비해야 한다.

극일의 성공여부는 선거와 권력만 생각하는 ‘선동적 정치꾼들’이 아니라 그들을 감시·감독하는 ‘이성적 시민들’에 달려 있다. 최근 성숙한 시민들의 극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정치꾼들의 잘못을 일깨워주고 있음은 ‘불행 중 다행’이다. 민주당의 ‘한일갈등이 총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보고서를 접한 시민들은 경제전쟁마저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느냐고 꾸짖고 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다고 발표하던 날 긴급국무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일본에 다시는 지지 않는다”고 격분하던 대통령이 이제 “감정적 대응은 안 된다”고 말을 바꾸게 된 것도 지식인의 비판과 유권자의 힘이다.

정부가 경제문제를 정치이념으로 극복하려고 한다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경직된 이념’에 매몰되면 ‘살아서 움직이는 경제’를 따라잡을 수 없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말한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는 충고는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에게도 해당되며, 대통령 자신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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