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주 한동대 교수
김학주
한동대 교수

원화의 가치 하락이 심상치 않다. 한국인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자원이 부족해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석유를 포함한 해외 원자재를 비싸게 사다 써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해외 여행도 부담스러워진다.

많은 이들이 지금의 원화가치 하락을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따른 여파로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이 가까운 장래에 해소될 수 있을까?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는 9월 1일부터 실시 예정되었던 3천억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대해 일부는 12월 15일로 연기시켰고, 일부 제외된 품목도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내년 말 대선을 앞두고 이제부터는 ‘끝내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성과를 챙기기 위해 더 이상의 갈등보다는 타협의 수순에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다.

과연 그럴까? 그 동안 트럼프가 중국과의 갈등 유발을 통해 얻은 성과를 계산해 볼 때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 경쟁자들에 뒤쳐지는 그의 지지율을 뒤집기는 턱 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대선까지 중국과 대결구도를 유지하며 포퓰리즘에 의존하는 편이 트럼프에게 유리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트럼프를 민주당이 비난하지 못한다. 고된 삶을 사는 미국인들이 불평할 수 있는 창구를 포퓰리즘이 만들어주고 있는데 거기에 잘못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간 교역에 차질이 생기는 한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 오기는 힘든 상황이 된다.

그런데 원화가치 하락에는 이런 갈등보다 더 근본적 요인이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 저성장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환율을 결정하는 요인이 해당국의 성장 잠재력보다는 “현재의 상태를 얼마나 버티고 유지할 수 있느냐?”, 즉 지속성(sustainability)으로 평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한 국가의 지속성을 평가하기 위해 보유 자원을 본다. 예를 들어 천연자원, 인적자원, 모아 놓은 유보 자산, 일본처럼 다른 나라의 자산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등이다. 한국은 뭐가 있을까? 달러를 벌어 올 수 있는 인적자원뿐 아닐까? 문제는 저성장 속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해야 할 동기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펀드 매니저들 가운데 똑똑한 많은 젊은 친구들이 집으로 갔다.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 둔 것이다. “예전처럼 펀드가 성장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의욕이 있겠는가?” 또는 “왜 남의 자산을 운용해 줘야 하는가? 내 자산을 굴려도 밥벌이가 되는데… 차라리 삶의 질을 찾겠다”는 대답을 한다.

과거 성장하던 시절 한국의 잘 교육된 인적자원은 꿈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저성장 환경이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더 이상 한국은 신나지 않는 동네가 되어 간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내국인 외국인 가릴 것 없다. 이것이 원화가치 하락의 근본 요인이다.

과거 원화가치 하락의 수혜주가 뭐냐고 물어보면 얼른 수출주를 연상했다. 그러나 이제는 저성장 기조 속에서 그런 성장을 위한 도구보다는 차라리 해외자산을 직접 본다. 또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익의 안정성을 높게 평가한다. 따라서 원화절하의 진정한 수혜주를 배당지급능력이 있는 해외 필수소비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콘텐츠 업체들이다. 또한 친환경을 포함하는 사회책임 펀드, 즉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관련주도 대안으로 제기된다.

심지어 술, 담배, 도박, 마약 등 중독성이 주는 이익의 안정성까지 탐을 내는 펀드가 늘어 날 정도다. 이런 죄악과 관련된 주식(Sin Stock)을 과거 공익펀드에서 모두 팔았었는데 이제 다시 사고 있다. 그 만큼 투자자들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확실한 것에 굶주려 있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이런 환경에서 불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