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택

난로 위에 머리카락 하나가 떨어진다

머리카락은 타면서 액체가 된다

액체는 거품을 물고 격렬하게 꿈틀거린다

그 꿈틀거림 속에서 고약한 냄새가 뿜어져 나온다

뿌리를 뻗으며 식물인 양 얌전하게만 자라던 것이

불에 닿자마자 슬픈 몸짓 역한 냄새로

제 뜨거운 동물성을 있는 대로 드러내니

눈 달린 것 이빨 달린 것 숨쉬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독한 냄새를 지우려고 창문을 열자

차고 커다란 겨울바람이 들이닥친다

머리카락 속에 용쓰던 힘과 냄새는

그 바람 속으로 고분고분하게 빨려들어간다

하나씩 죽음이 보태질 때마다

바람에도 하나씩 힘이 더 붙는다

그 바람이 낡은 집을 붙들고 요란하게 흔들어대니

문짝들 창문들은 덜컹거리고 삐걱거리며 밤새 앓는 소리다

난로 위에는 이제 더 이상 머리카락이 아닌 것이

상처자국처럼 꺼멓게 늘어붙어 있다

난로 위에 떨어져 역한 냄새를 풍기며 타들어가는 머리카락은 소멸의 순간을 의미하는데 검고 윤기나던 머리카락이 역한 냄새를 풍기며 소멸되어버리는 상황을 설정한 시인은 삶과 죽음을 떠올리고 있음을 본다. 매우 인상적이고 즉물적인 표현이 이채롭기 그지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