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시인
김현욱 시인

휴식(休息)이란 멈추는 것이다. 쉼이란 내려놓는 것이다. 방학이 놓을 방, 배울 학(放學)이듯이. 영어 베케이션(vacation), 프랑스어 바캉스(vacace)의 어원은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이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해제, 비움’을 뜻한다. 휴가(休暇)란 나무에 기대어 사람이 쉬는 모양이다.

나무에 기대어 쉬는 것도 좋지만, 폭염에 가장 좋은 휴가는 시원한 도서관에서 쉬는 것이다. 그동안 못 봤던 책과 잡지들이 나무처럼 곁에 있다. 방학동안 포은도서관에 사람들이 붐비니 반갑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은 더 반갑다.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지만, 아이와 어른들이 붐비는 도서관은 내 맘을 기쁘게 한다. 한 나라의 미래는 도서관에 있다. 교육감과 단체장들은 공공도서관 투자만큼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

휴가 중에 도서관에서 읽은 책 중에 정민 교수의 <다산의 지식경영법>이 가장 볼 만 했다. 정민 교수는 다산을 조선 최고의 지식경영자라고 칭했다. 다산이 남긴 저서는 500여권에 이른다. 시시껄렁한 책이 아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후손에게 끊임없이 회자되는 명저들이다. 세계사를 뒤져봐도 다산보다 뛰어난 저술가는 찾기 쉽지 않다. 도대체 다산은 어떤 방법으로 그런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일까?

<다산의 지식경영법>에 따르면, 다산은 정독(精讀), 질서(疾書), 초서(抄書) 세 가지 독서법을 실천했다고 한다. 정독은 낱말과 문장, 전후 맥락을 아주 세세하게 뜻을 새겨가며 읽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 근본을 알 때까지 밝히는 것을 뜻한다. 다산은 아들 학유에게 그 방법을 편지로 전했다.

“예를 들어 『사기』의 「자객열전」을 읽는다고 치자. ‘조(祖)를 마치고 길에 올랐다’라는 한 구절을 보고 “조가 뭡니까?”하고 물으면, 선생님은 “전별할 때 지내는 제사다”라고 하실 것이다. “하필 할아버지 조 자를 쓰는 것은 어째서인가요?”라고 물으면, 선생님은 “잘 모르겠다.”고 하시겠지. 그런 뒤에 집에 돌아오거든 사전을 뽑아다가 조 자의 본래 의미를 살펴보아라. 자전에서 조(祖) 자를 찾아보면 뜻밖에 ‘길제사 지낼 조’라는 뜻이 나온다.

풀이를 찾아보면 “고대에 먼 길을 떠날 때 행로신(行路神)에게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도 할아버지 조 자를 쓰는 까닭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여기서 한 번 더 나가야 한다. 더 자세히 찾아보면, 먼 옛날 황제의 아들 누조(累祖)가 여행을 좋아하다가 길에서 죽었다는 기록과 만나게 된다. ‘조(祖)’란 조상이 아니라 바로 누조의 귀신을 위로하기 위해 생긴 제사임을 그제야 알게 된다. 마음이 후련해진다.

또 『통전』이나 『통지』, 『통고』 등의 책에서 조제(祖祭) 지내는 예법을 찾아보고, 한데 모아 차례를 매겨 책을 만든다면 길이 남는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전에는 한 가지 사물도 모르던 네가 이날부터는 조제의 내력을 훤히 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주자의 격물(格物)공부도 다만 이와 같았다. 오늘 한 가지 사물을 궁구하고, 내일 한 가지 사물을 캐는 것도 또한 이처럼 시작하는 것이다. 격(格)이란 밑바닥까지 다 캐낸다는 뜻이다. 밑바닥까지 다 캐지 않는다면 또한 유익되는 바가 없다.”(학유에게 부침(寄遊兒) 9-40)

세세하게 뜻을 새겨가며 읽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그 근본을 알기 위해 밑바닥까지 다 캐내는 독서법이 바로 ‘정독, 깊이 읽기’이다.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요즘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장문 읽기를 버거워한다. 단문과 축약, 이모티콘이 횡행하는 시대에 깊이 읽기는 울림이 크다. 학교나 도서관에서 다산의 깊이 읽기를 실천하는 방법은 ‘인문고전 낭독교실’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