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 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정치학

8월 14일 ‘기림의 날’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자는 날이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실명 증언한 날을 기념하여 2017년 12월 이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다. 지난해에 이은 기념식 행사 장면을 보니 여성가족부 장관과 정치인들이 참석하고 아직 생존해 있는 피해 할머니도 여러 명 참석하였다. 낯익은 얼굴의 이용수 할머니가 소복차림으로 앞줄에 앉아 눈물 짓는 모습도 보였다. 일본 군속명부에 정식 등재되어 있는 김복동 할머니도 올해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로 한일 관계가 뒤엉킨 상황에서 치러진 이번 기념식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남기고 있다.

일본군 피해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대구에 살아 계신다. 그는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 없는 위안부 합의는 무효라고 선언하면서 활발한 인권 운동을 펼치고 계신다. 1927년 생 92세인 그는 아직도 수요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도쿄뿐 아니라 뉴욕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아베 정권의 부당성을 알리고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전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한·중, 베트남 등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대한민국의 등록된 피해자는 238명이며, 2019년 5월 현재 21명이 생존해 있다.일본은 아직도 위안부의 강제 동원은 없었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 지난 7월초 연해주 학술행사에서 이용수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증언은 아베 정권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뒤집고 있다.

“나는 1928년 12월 13일 생입니다. 우리 나이로 92살입니다. 나는 15살인 1943년 일본군에 끌려가 대만 신숙에서 3년간 고통을 겪다 해방 후 1946년 가까스로 풀려난 사람입니다. 그 때를 다시 기억해 봅니다. 내가 끌려간 그날 밤 여자 아이와 군인이 나의 방 뒤의 봉창으로 들여다보며 나오라고 손짓했습니다. 그때 나는 장난하는 줄 알고 몰래 마루에 나와 앉아 있었는데 여자 아이와 군인이 갑자기 들어닥쳤습니다.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5명과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배를 탔습니다.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그날 밤 갑자기 끌려간 것입니다. 어린나이에 나는 너무 몰랐습니다. 그 길로 끌려간 곳이 대만 신죽(新竹)의 일본 특공대부대인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대만 일본 가미가제 부대였습니다. 그곳에서 군인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고 다리를 칼로 치고 죽이고 전기고문도 당했습니다.…… ”

이러한 수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고 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문제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로 연결되고 있으니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극우의 아베 정권은 한국 피해자들의 사죄와 배상 요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억지를 쓰고 있다. 아베 측근들은 강제 위안부는 한 명도 없으며 심지어 한국에는 본래 기생문화가 있었고 위안부들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 종군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아베는 2015년 박근혜 정권 말기 한일 간의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 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은 외교 관례를 어겼다고 비난한다. 과거의 고노 담화를 뒤집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일 간의 합의를 정부가 파기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제 징용의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처럼 국가 간 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법적 구제 절차는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법의 상식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할머니들의 동의와는 무관한 10억 엔짜리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해 버렸다. 시민들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27년간 1천400회의 수요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민족적 반일 감정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양식있는 시민들까지 이에 동조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지금이라도 위안부 문제에 관한 진정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한일 간 화해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