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치자금 후원회 연설에서 “임대아파트 월세 114달러 13센트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말했다는 보도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불쾌하다. 한미 간 방위비 협상은 늘 해왔던 일이니 액수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 장사꾼 트럼프는 마치 미군을 돈 받고 남의 나라나 지켜주는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66년 주둔 역사를 다시 공부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공식적으로 군사동맹이 된 것은 지난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다. 미국은 당초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부정적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 조약이 없으면 북한의 재침을 용인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면서 2만7천 명의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등 벼랑끝 전술을 펼쳐 미국을 움직였고. ‘전쟁 자동개입’ 대신 조약은 한국에 2개 사단을 주둔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작년에만 9천602억 원이 지급된 방위비분담금은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절반 가량에 해당한다. 뿐만이 아니다. 토지와 건물 무상제공, 도로세도 톨게이트비도 공짜다.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은 최저가로 제공하고 공무수행 중 민간인 피해도 우리 정부가 보상하고, 미군기지 환경오염도 우리 정부가 정화비용을 낸다. 이런 간접적인 방위비분담 비용을 고려하면 주둔비용의 70%까지 한국이 부담하는 셈이다. 평택 미군기지 건설비용 12조 원의 92%도 우리가 부담했다.

양국은 진통 끝에 지난 2월 제10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서명했다. 협정 유효기간도 종전 5년에서 1년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협정에 사인하고 나면 곧바로 다음해 분담금 액수를 놓고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대기업의 연례 노사 임금협상처럼 돼버려서 상시 논란과 갈등의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는 중국을 코앞에서 저지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이다. 트럼프에게 동맹의 개념이 희박하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한국이 내는 주한미군 분담금을 아파트 월세에 비유한 것은 민심을 자극하는 천박한 언행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반미감정이 한국민 사이에서 고조될 가능성이다. 일본에서도 트럼프의 방위비 증액 압력에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천박한 장사꾼 대통령이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것은 물론 피로 맺은 동맹과 동북아의 안정을 파괴하는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주한미군의 존재가치를 ‘용병’으로 추락시킨 트럼프의 언행과 의도는 양식 있는 미국민들의 상식과도 크게 어긋난다. 지금처럼 하면 세계사 속에서 미국 대통령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