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동네북 신세다. 야당이 벌떼처럼 일어나 오만 의혹들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까발리고, 이 나라 언론들이 피를 본 상어처럼 특종 경쟁에 돌입했다. 법무부 장관이 어디 만만한 자리이던가. 이 나라 법치를 온통 책임지는 행정부의 으뜸 자리이니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이상할 까닭은 없다. 하지만 지금 펼쳐지고 있는 따따부따는 가히 대선주자 후벼 파기 수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야당이 무슨 푸닥거리를 하든,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할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번 청문회도 결국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로 끝날 가망이 높다. 언론이 경쟁적으로 벌이는 취재 경쟁은 결과적으로 조국을 도와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방주사를 놔주니 면역성을 기르는 데도 좋고, 청문회를 할 즈음이면 김이 다 빠져서 더 좋을 수도 있다. 민심을 돌아보니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강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민정수석을 하면서 공직자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작업 한 번 제대로 못 한 무능 따위는 이미 까마득히 잊은 표정이다. 지금 시점에 오히려 관심은 과연 야당이 그동안 못 밝혀낸 중대한 하자 한줄기라도 더 찾아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

정말로 걱정되는 것은 제1야당을 비롯한 야당이 또다시 이 중차대한 청문회를 구닥다리 ‘호통’과 ‘어깃장’ 쇼로 마무리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다. ‘송곳 검증’이네, ‘메가톤급 폭로’네 하면서 빈 깡통이나 요란하게 두드리다가 종 치고 막 내리는 꼴이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돌이켜보면, 국회에서 벌어진 인사청문회가 선진국의 수준에 닿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욱이 제아무리 ‘부적격’ 딱지를 붙여도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돼 있는 제도하에서 국회 ‘인사청문회’는 유치한 ‘통과의례’처럼 돼버린 지 오래다. 왜 그럴까. 궁극적으로 국회 청문회가 민심에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문위원들의 낮은 의식과 역량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청문회(聽聞會)에 쓰는 문자는 ‘들을 청(聽), 들을 문(聞)’자로 구성돼 있다. 영어로도 ‘히어링(Hearing)’이다. 그런데 우리의 국회 청문회를 보면 청문회가 아닌 문문회(問問會)로 끝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략 청문위원으로 나선 국회의원의 묻고 또 묻는 ‘원맨쇼’ 형태로 펼쳐진다. 어쩌다가 답변을 좀 하려고 하면 청문위원이 말을 끊고 시간이 없다고 윽박지른다. 물론 여기에는 청문위원에게 할당된 시간에 ‘답변시간’을 포함하는 결정적인 결점이 있다. 청문회의 본질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질문시간’만 할당해야 하는데, 왜 안 고치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야당이 ‘조국 청문회’를 또다시 관습대로 해나간다면 무조건 실패다. ‘어쨌든 임명될 것’이라는 예단을 전제로 청문회 자체를 보이콧 한다면 이야말로 하지하책(下之下策)이 될 것이다.

조국 후보자에게 제기되고 있는 의혹은 사노맹 전력·사모펀드·동생의 위장 이혼과 편법 채무 문제 등 방대하다. 그러나 솔직히 야당이 결정적 허물을 밝혀내리라는 기대는 희박하다. 틀림없이 야당 청문위원들은 처음부터 흥분할 것이고, 중간에 논리가 부족하면 고함을 칠 것이고, 여차하면 파행으로 치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풍부한 정보를 움켜쥐고 의혹의 내용을 조곤조곤 따져 물어 ‘듣고 또 들음’으로써 국민이 진실을 좀 더 알게 하는 모범적인 청문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 이번 청문회를 우리 그릇된 청문회 문화를 확실히 바꿔 낼 계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알고 물어야 한다. 답변을 들어야 한다. 목소리를 낮추어 짧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을 들을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국회 청문회의 혁신’을 바라는 국민의 희망이 이번만큼은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