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內方)’을 넘어 현대가사의 새 지평을 열다
‘내방(內方)’을 넘어 현대가사의 새 지평을 열다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19.08.13 20:10
  • 게재일 2019.08.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을 만든 경북여성 (5) 현대가사문학의 선구자 조애영(上)

1911년 경북 영양군 일월면
한양 조씨 호은종가서 태어나
배화여고보 거쳐 이화여전 졸업
민족·애국·여성의식 드러낸
‘일월’ 등 현대적 작품 발표

조애영
조애영

조애영은 현대가사문학의 선구자였다. 1910년대 태어나 경북 영양 주실 마을의 명문집안에서 전통적 유교 교육을 받고 이후 신교육을 받아 내방가사의 전통적 모습과 함께 신교육을 통한 여성의식의 성장, 역사와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가사와 차별성이 있었다. 그녀의 삶 또한 가정적으로는 전통적인 유교적 질서를 따르면서도 남성중심의 사회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녀는 전통과 새 길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가교 역할을 했다.



△삼불차(三不借), 지조의 가문과 여성의식

조애영(1911~2000)이 태어난 곳은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201번지(주실길 27)다. 이곳은 조선 중기 호은(壺隱) 조전(趙佺)이 터를 잡은 이후 한양조씨들이 380년간 세거한 동족마을로, 산간오지에 자리한 이 작은 마을에서 17세기 이래로 영명한 인물이 계속 배출됐기로 유명하다. 이 마을을 다녀간 사람이라면 호은종가의 가훈‘삼불차(三不借)’에 대해 한 번 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삼불차란 사람·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가운데‘문불차(文不借)’의 전통이 이어져 온 것은 학문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은 주실마을 입향조 이래 마을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돼왔다. 그만큼 자존을 지켜왔다는 뜻이다.

주실마을 한양조씨의 역사를 처음 연 사람은 호은 조전이다. 그가 주실마을로 들어 온 때는 1629년이다. 주실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호은종택의‘호은’이 바로 그곳이다. 그 뒤 조씨 가문은 학문과 사환, 그리고 남평문씨 가문과의 혼인을 통해 명문사족으로 성장했다.

1 슬픈동경.(출처 조지훈 문학동산 다 음까페)
1 슬픈동경.(출처 조지훈 문학동산 다 음까페)

조애영은 1911년 3월 5일(음력 2월 8일) 아버지 조인석(趙寅錫), 어머니 진성이씨 이호정(李鎬貞)의 3남 1녀 가운데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조선 말기에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 조승기다. 이런 의병장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녀의 오빠들인 조근영, 조헌영, 조준영도 독립운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고 그녀의 작품에도 반일감정이 드러나게 된다. 할아버지인 조승기의 영향은 그녀의 역사적·사회적 의식과 정신적인 기반에 많은 영향을 줬다면, 아버지인 조인석은 그녀가 신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줬다. 이런 아버지의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성으로 장남 조근영과 차남 조헌영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유학을 했고, 삼남 조준영은 보성고보를 졸업했다. 3명의 오빠들에 이어 조애영은 15세에 상경해 배화여고보에 입학해 신교육을 받고 이후 이화여전을 졸업했다.

2 은촌내방가사집.
2 은촌내방가사집.

조애영은 15세경 가사 ‘일월산가’와 ‘산촌향가’를 짓는다. 그녀의 가사 중에서 가장 초기작에 해당한다. 그녀의 가사에서 나타난 여성 의식의 뿌리는 남다른 가문 의식이다.그 가문 의식은 조애영이 이후에 창작하는 작품에 나타나는 민족의식, 국가의식, 조국애로 연계되고 발전된다.



△옛 길과 새 길의 조화

조애영은 배화여고보에 다니던 1927년 ‘학생(學生)에‘농촌이야기’를 발표했다.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이는 첫 발표작이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남겨진 그녀의 첫 작품은 1929년 ‘개벽’에 실린 시조‘봉화(烽火)다. ‘일월산인’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이 작품은 암울한 시대상과 민족의식이 잘 드러난다. “日月山 烽火터엔 山나물만 무성하고, 桑田이 碧海되어 삼대궁도 없는 이 밤, 이 겨레 한 누더기로 태우는 횃불인가”라는 글귀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의 수탈로 말미암아 엉켜버린 우리 겨레와 독립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조애영은 실제 배화여고보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는데, 그녀의 가사‘사우가(思友歌)’에는 그 내용이 담겨있다.

“이내태생 산골처녀 십육세에 상경하여, 신식공부 해가지고 신여성이 되렸더니 신간회에 총무간사 헌영오빠 소개로써, 허간사댁 맏따님의 지도받아 주동됐네”

3호은종택.
3호은종택.

이 글을 통해 조애영이 당시 신간회 총무간사로 활동하던 둘째 오빠 조헌영(1899~1988)을 통해 허헌 변호사의 맏딸 허정숙을 소개받았고, 그녀의 지도 아래 만세운동을 이끌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이 일로 무기정학을 당하고 옥살이를 하다가 3개월 뒤에야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때의 억울한 마음을‘울분가’에 담기도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윤희정기자님의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