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대학은 1892년 록펠러의 전폭적인 투자로 멋진 캠퍼스를 갖추고 탄탄한 교수진을 꾸렸지만, 삼류 학생들이 모이는 대학이었습니다. 재단에서는 학교를 이끌어갈 젊은 지도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발굴한 새 총장은 예일 대학에서 법학대학원장을 맡고 있었던 30세 젊은 청년 로버트 허친스입니다.

허친스는 컬럼비아 대학 교육학자인 절친 27세 모티어 J. 애들러 박사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애들러 박사는 허친스에게 두툼한 목록 하나를 보내지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서(Great Books) 목록이었습니다.

애들러는 제안합니다. “만약 시카고 대학에서 이 위대한 저서들로 학생들을 가르쳐 보실 의향이 있으면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허친스 박사는 목록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목록에 자신이 읽은 책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죠. 신입생들 가운데 뛰어난 학생 20명을 뽑습니다. 매주 두 시간씩 고전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시작하지요. 허친스는 20대 초반 학부생들과 매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입니다. 고전 30권 정도를 독파해 나갈 무렵부터 변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50권을 넘긴 시점부터는 학생들의 질문의 깊이, 생각의 폭, 점과 점을 잇는 상상의 능력,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해 삶에 적용하는 힘이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100권에 도달할 때 학생들이 지닌 잠재력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허친스 총장과 애들러 박사는 시카고 대학 전체에 고전 읽고 토론하기 프로그램을 전격 도입합니다.

기득권 교수들의 극심한 반대와 모함에도 1930년대부터 시카고 대학의 커리큘럼은 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는 세미나가 핵심 프로그램으로 바뀝니다. 이후 시카고 대학 학생들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2010년에 이르기까지 시카고 대학 출신들이 받은 노벨상이 81명에 이릅니다. 시카고 대학 교수진의 반발 등으로 허친스 총장의 실험은 22년 후 중단되고 말았습니다만, 분명한 열매가 있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고전 토론이 직업을 얻는 기술을 직접 가르쳐 주지는 않습니다만 ‘나다움’이 무엇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내 삶의 롤 모델은 누구인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음은 확실합니다. 먹구름 너머 눈부신 삶으로 우리를 이끄는 확실한 도구는 책 중의 책 고전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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