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원로들이 집단으로 나서서 지난 7월 28일 발표된 일본 지식인들의 ‘한국은 적인가’라는 아베 총리 비판 성명에 “한·일 시민사회가 함께 동아시아 평화를 지키자”고 화답해 주목된다. 보수·진보를 뛰어넘는 우리 사회 각계 원로들이 모인 ‘동아시아평화회의’(좌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12일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특별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한·일 두 나라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과 해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8·15 74주년을 맞아 ‘한일관계의 위기를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로!’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특별 성명에는 평화회의 회원 80여 명 가운데 이홍구·고건·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을 비롯한 원로 67명이 참여했다. 평화회의는 성명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과 일본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관계를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이어서 “내년 2020년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의 해인 동시에 도쿄 올림픽의 해로, 한반도 평화와 한일 평화가 함께 증진되어 도쿄 올림픽이 세계인의 평화축제가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총리의 담화를 상기하며 “일본 정부는 한국인들에게 가한 고통과 비극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과의 자세를, 한국 정부는 일본인들의 전후 경제발전·동아시아 평화 기여에 대한 인정과 화해의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한·일 정부에 갈등대립을 확대하는 자세를 극도로 자제할 것을 당부한 뒤 “일본 정부는 경제보복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는 조치들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며 한·일 정부가 즉각 직접대화를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성명은 “우리는 일본 지식인 75명의 성명에 공감한다”면서 “아베 정부가 새 시대를 이웃 나라와의 적대로 시작한다면 일본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며 세계를 크게 실망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화회의 좌장인 이홍구 전 총리는 “책임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하고 동양 평화, 지구촌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자는 생각에 성명을 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지난 7일 “첫째 식민 불법, 둘째 배상 포기, 셋째 피해자 국내 구제선언 이렇게 3개 사항으로 구성되는 특별 성명을 발표하자”는 제안을 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증폭되고 있는 한일 경제갈등을 종식시킬 제3의 해법이 나와야 한다. 양국의 성숙한 여론의 힘으로 저급한 정치적 야욕으로 악화시키고 있는 한일외교를 바로잡을 때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망가뜨리는 이 유치한 공멸의 갈등은 하루빨리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