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시인·교사
조현명 시인·교사

한국인의 평균 지능지수는 106으로 세계 1위라고 알려져 있다. 이 지능지수에 창의력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학교에서 경험하는 것은 한국인들의 유전자에 창의성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창의력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의문이지만 학교가 이 창의력을 막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창의력은 질문할 용기에서부터 출발한다. 학교에서 질문하는 아이는 버릇없고 쓸데없는 생각을 가진 아이로 취급되기 쉬운데 질문은 어디까지나 학습하는 진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범위를 넘어가면 쓸데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범위를 제한하면 창의력이 담길 수 없다. 시험성적을 위해서 정해진 답을 암기해야하는 현실에서 창의력을 발휘한 질문은 금물이다. 당연히 쓸데없는 질문을 하면 성적향상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한국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으나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기자가 질문하려 한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토론 강의 서두에 단골로 올라온 영상이다. 그때 강사들의 질문은 ‘왜 한국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려 하지 않았을까’이다. 이 화두는 충격을 주기 위함이고 반성을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다. 이래서 한국인들은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비판정신도 없고 어쩌고 하는 평을 늘어놓아 반성적으로 토론강의에 임하게 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 기자들이 질문과 토론의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기자회견의 질문자가 정해져있는 데다가 미국 대통령에게서 나올만한 대답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질문자가 정해지지도 않고 답변도 예상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그렇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든다. 학생들에게 적당한 문제를 내어주고 프로젝터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문제 상황에서 길을 찾아가는 학생들의 능력은 대단하다. 열정이 있고 충분히 아는 것도 많으며 해결점을 찾고 조직하고 적용하는 수업에서 학생들의 호기심과 끈기를 그들의 잠재력을 보았다.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그것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바꾸어 내는 창의적인 두뇌들도 있다. 감탄할 만하다. 이런 경험을 필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한국인들은 노벨상을 탈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국력이 그를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상을 타지 못할 뿐이라는 설이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창의력을 억누르고 있는 학교의 교육시스템, 그것을 극복하고자 새로운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과 수업개선 등 다양한 노력이 병행되고 있다. 그러나 평가방법이 올바르게 개선되지 않으면 허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국적으로 동시에 치르면서 오지선다형인 대입 수학능력시험에 의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왜곡되어 오고 있다. 고3의 2학기 수업이 파행적인 것이 대표사례다.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은 그나마 평가를 다양하게 유도하는 듯 보이나 학교에서 시행되는 중간·기말고사의 성적이 사실상 과목별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중간·기말고사가 100%인 다양한 형태의 수행평가로 시행되는 고교는 드물다. 공정성 때문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평가방법의 개선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숙명여고 사건이나 여타 성적조작 사건으로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교사에게 책임을 지우고 문책하는 편이지 평가에 대한 자율권은 조금도 인정해 주진 않는다. 바칼로레아라는 논술평가를 시행하는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 교사가 교과서도 없이 자신이 직접 조직한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자율권을 가지고 평가한다. 학부모와 학생들도 그대로 따라 간다. 프랑스의 시스템에 한국 학생들이 배운다면 한국 학생들의 창의력은 아마 우주를 뚫고도 남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인재는 창의성을 가진 인재이다. 교사의 평가를 믿어주고 성적조작이라는 시선으로 공정성만 요구하다보면 평가개선은 요원해지고 미래를 여는 창의력 교육은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