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연일 폭염특보가 발령되고 있다. 입추와 말복이 지났는 데도 기세가 여전하다. 최고 기온이 39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에도 전국 곳곳에서 ‘반(反)아베’ 시위가 확대되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극장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복동’과, ‘봉오동전투’가 항일영화로 받아들여져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영화 ‘김복동’은 본다”는 해시태그(#)가 확산되고, 못 보는 경우 표를 예매하는 ‘영혼보내기’가 진행되고 있다. ‘봉오동전투’는 개봉 4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였고 전체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일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어느덧 1400회가 되며 맞이하는 제74차 8·15 광복절의 의미가 그래서 더 각별하다.

‘광복(光復)’은 일본의 식민통치의 속박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권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백가쟁명 시대라고 하더라도 최근 언론에 보도된 극우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우리 안의 식민성을 돌아보게 한다. 지만원은 유튜브 방송에서 ‘반일 나선 개돼지들’이라는 제목 하에 “위안부가 창피하다”고 말한다. 엄마부대 대표 주옥순은 위안부 소녀상 옆에서 “한일동맹을 고의적으로 파탄 낸 문재인은 하야하라”고 주장하며 “아베 총리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우리 일본’이라는 표현속에 편 가르기를 하며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 어려운 시국에 함께 뜻을 모으기는커녕 역사의식의 부재로 자신의 이해관계가 우선적인 기준이다.

우리들은 사회에서 태어나고 역사를 통해 성장한다. 지금의 한일관계를 고려할 때 우리 내부가 먼저 단합하고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갈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적폐청산’도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만 제대로 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안의 부끄러운 모습과 모순들을 해결해가야 한다. 일본산 제품의 불매운동을 넘어서 차제에 독자적으로 경제기술을 개발하고 자력으로 설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해야 한다.

일본 아베정권이 경제적 압박이 시작되었다.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려면 구한말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인지 깊은 통찰이 요구된다. 또 다시 무력하게 무너지지 않으려면 구호만이 아닌 구체적인 전략과 실천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친일(親日)’, ‘반일(反日)’이라는 프레임 논쟁을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극일(克日)’을 하려면 ‘지일(知日)’과 ‘용일(用日)’의 마인드가 요청된다. 미 국무성이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를 활용하여 일본인의 의식구조와 문화적 특성을 파악해 전후 관리를 구상하고 도모했던 것처럼, 일본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일본에 대한 격앙된 감정과 우리 내부의 소모적 논쟁을 극복하고, 일본의 ‘혼네’를 정확히 파악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의 주체적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

지난 주 한국사고와표현학회 동학들과 인제 만해마을로 하계 워크숍을 다녀온 덕분에 독립운동가 한용운 선생의 행적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다. ‘조선인은 조선 것으로’ 라는 물산장려운동과 국산품 애용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의 자주자립 운동을 이끈 한용운 선생은 ‘독립은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강조하였다. “개인은 개인의 자존심이 있고 국가는 국가의 자존심이 있나니 자존심이 있는 민족은 남의 나라의 간섭을 절대로 받지 아니한다”며 재판정에서 열변을 토하는 만해 소식을 보도한 오래된 신문의 글이 마음에 남았다. 폭염과 열대야로 힘든 여름을 보내면서 더욱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한일갈등을 바라보는 우리 안의 대립되는 시선이다. 우리의 앞날을 좌우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열망하는가에 달려 있다. ‘진정한’광복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