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승 호

회전문 속에서 가방을 놓치고

회전문 밖으로 밀려나와 가방을 본다

이것은 죽음의 한 경험인가

회전문 밖으로 밀려나온 여기가 후생(後生)이라면

가방 든 시절이 전생의 이승이었단 말인가

회전문 밖에서 떨어진 가방을 들여다본다

내용물은 별것도 아니지만

나 없으면 육신의 껍질이나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지금 잃는다면 아쉬움도 꽤 따를 것이다

장례식에는

산 자들이 억누르는 슬픔의 총체보다 더 큰

죽은 자의 고요한 슬픔이 뒤따른다

회전문 속에 가방을 떨어뜨리고 나와 밖에서 그 가방을 바라보며 시인은 인생을, 인생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가방은 우리가 평생 살아오면서 쌓아온 재산과 명예와 지위 같은 소유를 의미하는데 회전문 속의 가방처럼 나를 떠난 그것은 크게 가치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장례식에서의 이런 느낌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것을 표현하면서 부질없는 소유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