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 시인
김현욱 시인

사다리차가 들어온다. 뒤따라 이삿짐차가 들어온다. 주차 된 차를 빼달라고 인부들이 휴대폰을 들고 분주히 오간다. 하나둘 차가 빠지면 사다리차가 튼튼한 지지대를 내린다. 사다리차가 겹겹이 접혀있던 사다리를 펴 올린다. 7층 베란다 난간을 겨눈다. 난간에 담요를 덮는다.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위치를 맞춘다. 짐을 올릴 사다리차 바닥이 몇 번 오르락내리락한다. 이삿짐차 문이 열리고 짐이 쏟아져 나온다. 짐이 올라간다. ‘아, 이사를 왔구나!’ 누가 이사 왔는지는 모른다. 저 사람들은 인부들이다. 저기 저 위 베란다에 있는 아주머니가 주인인가? 책이 많은 걸 보니 집에 학생이 있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화분도 제법 자리를 차지한다. 초등학생이 타는 자전거와 킥보드도 보인다. 집에 초등학생이 있는 모양이다.

이상은 우리 아파트에 이사 풍경을 관찰한 글이다. 그냥 무심히 보아 넘기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이렇게 대놓고(?) 관찰한다. 그러다 운 좋게 시를 몇 편 얻기도 한다. “이사// 이른 아침부터/ 베란다 밖으로/ 사다리차 바구니가/ 오르락내리락/ 고개 내밀어 보니/ 침대 냉장고 장롱 텔레비전…./ 부지런히 내려가는/ 이삿짐들/ 여태/ 누가 살다/ 누가 가는지 몰랐는데/ 짐이 이사 가네/ 짐만 살다 가네.//’, ‘인사// 분리수거장 앞에// 낡은 장롱/ 깨진 벽거울/ 다리 한쪽 부러진 식탁/ 주저앉은 소파/ 둘둘 말아 놓은 전기장판/ 칠 벗겨진 옷걸이/ 빨간 끈에 묶인 전집/ 내려앉은 책장/ 녹슨 세탁기// 잘 있다 간다고/ 인사도 못하고 간다고/ 친구네 대신/ 그렇게 한 이틀 서 있었습니다.//”

관찰(觀察)이란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본다는 뜻이다. 주의(注意)는 마음에 새겨 집중한다는 말이고, 살피다는 두루두루 자세히 보고 따지고 헤아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관찰보다는 익숙한 판단을 따른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캠릿브지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은 중요치 않고, 첫번째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망창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나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글자가 엉망진창의 순서로 나열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별 탈(?) 없이 읽을 것이다. 관찰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에서 13가지 창의성 도구 중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바로 ‘관찰’이다. 이 책에는 위대한 관찰자들이 나오는데, 화가 조지아 오프키는 “나는 그전에도 천남성을 많이 보아왔지만 그 꽃을 그렇게 집중해서 들여다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듣는 것’과 ‘주의 깊게 드는 것’을 구분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미술 선생님이었던 피카소의 아버지는 피카소에게 비둘기 발만 반복해서 그리도록 시켰다. “열다섯 살이 되자 나는 사람의 얼굴, 몸체 등도 다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비둘기 발밖에 그리지 않았지만 어느 때는 모델 없이도 그릴 수 있었다.” 피카소는 한 사물을 유심히 반복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다른 것들도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관찰은 모든 창의성의 시작과 끝이다. 관찰은 인내가 필요하다. 후천적 연습이 필요하다. 세상 모든 순리가 그리하듯 “관찰은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삶에서도 관찰은 중요하다. 붓다가 설했다. “분명한 지혜를 가지고 관찰하는 사람은 괴로움에서 멀리 떠나게 된다.” 나는 분명 관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