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속 황금은 어떻게 캐낼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사형을 결정한 아테네 시민들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나 자신은 포테이다이아와 암피폴리스 그리고 델리온 전투에서 그대들이 나를 지휘하라고 임명한 장군들이 머무르라고 명령할 때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장소를 죽음을 무릅쓰고 지켰습니다. 그랬던 내가, 지혜를 사랑하며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이 인생에 대해 생각하도록 캐묻는 데 삶을 바치라고 신께서 이 땅에 보내주셨는데도 죽음이나 다른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제자리를 버리고 떠난다면 이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삶의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캐묻는’ 데 있다고 말하지요. 문답법을 통해 사람들에게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것이 삶의 목적이므로 설령 죽음에 이르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할 일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제자 플라톤은 ‘국가’ 7권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캐묻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갑니다. 동굴의 구조가 특이합니다. 벽 앞에는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이 있는데, 이들은 단단히 결박해 놓은 상태로 평생 한 번도 뒤를 돌아볼 수 없었고 오직 앞만 볼 수 있습니다. 뒤편에는 담이 있고 그 담을 끼고 길이 나 있습니다. 담 뒤편에 큰불이 피워져 있어서 그 불빛에 사물들이 비치고 죄수들은 담 위를 오가는 물건들의 정체에 대해 그림자를 보고 유추합니다. “아. 지금 당나귀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구먼.” “이번에는 두 사람이 가고 있네.” “바윗덩어리가 굴러간다.” 이런 식으로 그림자를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 거지요. 죄수들은 세상만사를 벽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본질이 아닌 피상적인 생각으로 평생 살아갑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합니다. “어느 날 한 죄수가 사슬에서 풀려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게.”

동굴은 비스듬히 지하 쪽으로 깊게 파 내려가 있고 불이 피워진 담 아래쪽으로 밖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통로가 존재합니다. 풀려난 죄수는 난생처음 겪어 보는 자유의 걸음을 한 발씩 딛게 되지요. 통로를 따라 오르막을 기어오르자 저 멀리 환한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출구입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망막을 보호하기 위해 눈을 감다시피 하고 동굴 밖으로 나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눈을 감고 있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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