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 동안 서울 가까운 곳에 가 갇혀 있었다. 시험문제를 내는 일이었는데,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물론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었다.

건물 바깥으로도 나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건물 중앙의 창으로 보이는 뜰에도 출입할 수 없는 ‘감금’은, 몸 아픈 사람의 ‘휴양’에는 더 없이 좋은 약이었다. 아침이 오면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문제를 내다 보면 금방 점심 때가 되고 오후는 조금 더 길게 느껴졌지만 아무 나갈 일도 없고 연락올 데도 없는 두 주일이란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던가! 바깥 소식은 오로지 텔레비전으로만 접할 수 있었으니, 이 일방통행식 수신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보고 듣고 생각만 하면 되니 말이다.

텔레비전 뉴스는 세상의 소식을 먼데 일처럼 실어다 주었다.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이 들려왔다. 정두언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인데, 경찰은 휴대폰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지난 번에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날 때도 휴대폰이 없어졌다 나타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황병승 시인도 자신의 집에서 세상 떠난지 근 보름만에 발견되었다고 했다. 지난 ‘미투’ 열풍 때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데, 그때부터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삶을 살아왔다 했다. 나는 ‘미래파’라는 ‘소동’ 가까운 ‘유파’에 ‘전혀’ 냉담한 편이었다. 그의 죽음은 지난해 그를 후원해 주던 비평가의 타계와 함께 이 ‘유파’의 ‘치세’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세상에서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벨기에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더위로 무슨 조치가 내려졌다고도 하고 서울에서도 관측 이래 최고였다나 하는 무더위 소식이 이어졌다. 갇혀 있기는 해도 문제를 ‘뽑아내기’ 위해서 실내 온도만큼은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당국’의 배려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옛날에는 겨울이 좋고 더운 여름이 싫었는데, 지금은 겨울도, 여름도 다 좋아진 나 자신의 삶을 생각했다. 체온이 내려가고 심장이 느리게 뛰고 사람들을 만나는 활기보다 홀로 주어진 시간이 반가운 나이.

갇혀서는 술도 마실 일 없으니, 지난 오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막걸리로 오염된 몸의 독소도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좋은 일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드디어 술을 끊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출소’해서 나가면 새 삶을 살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덜 시달리게 하니 잠도 규칙적으로 잘 수 있기는 하지만 이미 두세번은 깨다자다 해야 하는 체질, 새벽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검은 창밖으로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가까이서 비내리는 소리 듣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도시에서 창은 이중창일 때가 많고 그나마 허공에 뜬 아파트에서 날것 그대로의 빗소리란 쉽게 듣기 어렵다.

‘비가 내리는군.’

그러고 보니, 장마전선이 북상해서 며칠 동안 수도권 일대에 비가 계속될 거라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았다. 며칠 전에는 태풍으로 제주도 무슨 오름인가에는 사상 초유 천 밀리미터가 넘는 비가 내리기도 했다고도.

사람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날들, 새벽의 장맛비는 내 몸속에 남아있는 소년 시절을 되살아나게 했다. 참 비가 좋은, 비가 오면 몸이 흠뻑 젖도록 자전거를 타고 학교까지 한 바퀴 돌아오고서야 직성이 풀리던 시절이었다. 새벽에 줄기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하나하나 세면서 생각했다. 정말 이번에 출소하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삶을.

/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