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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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무회의에 참석하면 가장 골치 아픈 논의가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학과의 정원을 줄여서 어떤 학과의 정원을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가장 골치아픈 논의 중 하나다. 학과의 정원을 줄이고 싶은 학과는 없기 때문인데, 대학의 입장에서는 잘 나가는 학과의 정원을 늘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한국대학에서만 빚어지고 있는 기현상이기도 하다. 그건 대학정원의 결정을 교육부가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교육부가 다소 충격적인 발표를 하였다. 교육부가 대학입학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다소 듣기에 생소한 정책 발표를 하였다. 지금은 교육부가 전체 대학에 점수를 매겨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선정, 국가 장학금 등 교육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만들어 사실상 대학의 정원조정을 압박하고 퇴출시키는 방식으로 대학정원에 간섭하고 있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평가는 원하는 대학만 하고 평가 결과를 내놓을 때도 ‘일반 재정 지원 대학’만 선정하겠다고 했다. 다소 획기적이다. 아마도 이런 조치의 배경은 구조조정을 해봐야 학령인구 감소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정책변경이라기보다는 정책포기로 봐야 할 것이다.

고된 과정을 통해 힘들게 평가해서 줄인 정원이 5년간 6만5천 명 정도인데 앞으로는 5년간 학령인구는 15만 명 가량 줄어든다는데 주목해 본다. 2000년 수능에 응시했던 학생은 89만 명이었다. 수능 시험일 일정 시간에는 비행기가 날지 못하고, 전 국민이 수험생을 위해 숨을 죽이고, 모든 언론 매체가 수능 시험을 톱 뉴스로 다루는 그런 분위기였다. 대학으로 가는 길은 그만큼 치열했다.

그런데 금년 수능시험 응시자 수는 55만 명으로 예상된다. 2000년보다 35만 명 가량 줄어들었고 역대 최저라고 한다. 그리고 당장 내년부터 만 18살 학령인구 숫자는 50만 명 밑으로 내려가고, 5년 뒤 2024년이 되면 37만 명이 된다고 한다. 2000년에 비하여 정확히 반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번 발표는 교육부가 구조조정을 하는 속도보다 인구 감소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공연히 고생만 하고 문제해결을 못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정책좌절로 보인다. 그동안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없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있어왔다. 교육부가 대학지원을 무기로 입학정원에서부터 대학 구조조정까지 여러 가지로 대학을 규제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은채 대학을 규제하여 오던 교육부가 이젠 가만 내버려 두어도 대학은 고통 속에 스스로 규제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손을 놓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혼돈하고 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대학을 규제하지 않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고 상황이 안좋을 때는 대학을 도와주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다.

지금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학을 규제하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교육부가 평시에도 대학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규제하고 있다가 지금과 같이 위기 상황에서 대학은 고통을 대학자율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고통을 받게 될 지역 군소 대학이나 전문대 같은 취약 대학에 좀더 많은 지원책을 입안하여 그러한 대학들이 입학정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평가는 필요하고 평가를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 평소에 규제의 칼을 사용하던 교육부는 이제 대학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좀 더 잘 구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