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기다리며
가을을 기다리며
  • 등록일 2019.08.07 19:10
  • 게재일 20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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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입추(立秋). 장마와 폭염 그리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입추를 맞는다. 여름의 끄트머리는 몇 자락 무더위를 남기고 있겠지만 다가오는 계절을 막을 길은 없다. 뜨거운 날들을 지나면서 빚어진 일본과의 갈등은 모두의 생각을 무겁게 한다. 한낮의 더위는 몸을 지치게 하지만, 이웃이 던진 불씨는 마음을 힘들게 한다. 두 나라의 역사 가운데 오래 쌓여온 불화는 이번에는 해소할 것인지 한 자락 기대도 얹어 보지만, 불편함의 빌미만 한 차례 더하는 게 아닐까 걱정부터 생긴다. 남들은 혹 모른다 해도, 두 나라 백성들은 이 다툼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통상과 무역이 문제이지만, 속으로 멍든 까닭은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온 탐심과 반목이 아닌가.

전쟁이 시작되었다. 역사가 빌미인데 애꿎은 경제가 힘들 모양이지만, 따질 겨를도 없이 우리 기업과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경제가 지향하는 자유무역과 개방경제에 제동이 가해진 터에, 새로운 출구와 해결책을 찾아서 온 나라의 지혜를 모아야 할 모양이다. 나라 간 비교우위에 따라 국제적 분업의 균형과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일본이 그에 차단과 교란을 초래한 일은 세계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한국을 공격하기 위한 일본의 선택이라 해도, 글로벌시장에서 일본은 무엇을 얻을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미국과 중국도 금융과 경제로 갈등의 소용돌이에 있어 한일 간의 문제는 국제적인 관심도 모아지지 않는다. 후텁지근한 기후만큼 답답한 실타래를 두 나라는 지혜롭게 풀어낼 수 있을까.

전쟁은 이겨야 한다. 이기려면 모아야 한다. 지혜를 모아야 할 때에 생각을 흩어놓지 말아야 한다. 생각도 모으고 전략도 모으며 이기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싸워야 한다. 나라도 기업도 개인도 역량과 지혜를 한점에 모아 뚫고 나아가야 한다. 상대 앞에서 우리끼리 흩어지는 일은 우리를 얕잡아보게 할 치명적인 실책을 스스로 만들게 한다. 현명하고 치밀하게 대응하여야 하며, 이성적인 판단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 당면한 과제에 집중하여 정연한 논리와 협상의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이 우리를 힘들게 한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옛일에 사무쳐 감정으로 흐르지도 말아야 한다. 통상과 외교에서 승부수를 만들어야 하며, 스포츠나 문화로 확산하지 않아야 한다. 글로벌환경도 염두에 두어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는 오히려 점수를 올리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일본이 솔직해져야 한다. 경제가 문제인가 역사가 숙제인가. 한국경제를 욕보인 끝에 국제통상의 가치사슬(value chain)이 무너진다면 일본이 얻을 실익은 무엇인가. 사라질 고객들을 어떻게 다시 불러온 것인가. 나라가 빚은 역사의 상처 앞에 겸허하게 태도를 밝히고 분명하게 실천하여야 한다. 식민지 국민을 힘들게 하였던 굴곡진 기억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국이 원한다면 수없이도 돌이키겠다는 독일의 마음도 다시 보아야 한다. 일본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가 21세기에 적절한 것인지도 살펴야 한다. 전쟁을 다시 하겠다는 야욕이 실재한다면, 일본 국민은 이를 분명히 판단하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전쟁은 74년 전에 끝이 났지만, 우리가 진정한 독립을 누리고 있었는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아직도 남아 있을 미묘한 열등감이나 패배의식은 이 기회에 분명히 벗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글로벌환경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웃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린관계를 다시 지어야 한다. 이념과 욕심을 앞세워, 성실하게 일하는 기업과 국민을 어렵게 하지 말아야 한다. 시원한 가을을 기다리듯이, 평화롭고 화합하는 한일관계를 기대해 본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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