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는 예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맞는 감성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의 환경은 디지털 미디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는 오프라인 만남이 중심이었으나 오늘날을 컴퓨터 이메일과 메신저, 문자 메시지, SNS 등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컴퓨터, 핸드폰 단말기,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발달이라는 하드웨어적 환경과 함께 오프라인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충족하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대표적 예로서, 컴퓨터 미디어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글자를 입력하고 출력하는 것이 빠르고 편리하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하면 입출력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잘못된 부분을 빨리 고칠 수 있고, 수정 횟수에 제한이 없다. 셋째, 컴퓨터는 모니터에서 출력이 되기 때문에 주로 시각을 이용한다. 넷째, 오프라인에 비해 공간적 제약이 덜하다. 시간만 약속하면 어디서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며, 자신이 할말을 메시지 형식으로 남길 수 있으므로 시간의 제약도 적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컴퓨터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교육적으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는 시각과 청각에 국한되며 키보드와 마우스 입력 방식은 학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정형화된 컴퓨터 글씨로 제약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컴퓨터의 입력방식이 가진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개인적 표현의 욕구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비록 이모티콘, 영상, 기형화된 상징 등을 이용하여 자신의 개성과 표현 욕구를 표현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억압되고 왜곡된 정형화된 입력 방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것이 감성교육이다. 감성교육의 중요성은 루소에 의해 언급되었다. 루소가 비록 감성교육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감성을 통한 공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원시인들과 현대인을 비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원시인들은 자기애와 연민이라는 자연적 미덕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기애란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려고 하는 것과 같은 자기보존의 본능을 말한다. 자기애로부터 출발한 자기보존능력은 현대인의 욕망과는 차이가 있다. 예컨대 사자는 배가 고프면 임팔라를 잡아먹지만 배를 채운 뒤에는 더 이상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이렇듯 자기애는 무한한 욕망이 아니라 자연적 한계를 가지는 유한한 욕망이다.

의식주와 같은 본능적 욕망에 있어서 자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은 수긍이 간다. 그렇다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될까? 자기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원시인은 현대인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루소는 현대인과 다른 원시인의 매우 중요한 특징으로 연민 즉 공감능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건장한 원시인이 약한 어린 아이나 노인이 어렵게 획득한 식량을 강탈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연민 때문이다. 원시인들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인 연민에 의해 타인도 자신처럼 자기보존의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스스로의 자기애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가 긴밀해지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은 점점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된다. 사회 상태에서 발달한 인간의 인성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여 자신을 흔들어 놓거나 고통스럽게 하는 외부의 모든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그리하여 자기애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심리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결코 충족되는 법이 없는 자존심으로 대체되고, 자신보다 못한 자에 대한 연민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신보다 나은 자에 대한 시기심만 남게 된다고 루소는 말한다.

루소의 말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현대사회에서 감성보다는 이성이,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감성지능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능력을 말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감성을 발달시키는 일은 공존과 공생을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오감을 자극해 이루어지는 감성교육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현재 교육기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리기를 통한 놀이이다. 흔히 심리학자들은 아이가 그리는 그림이 그 아이의 내면세계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 그림 속에는 성격이 반영되기도 한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표현과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형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그리기 놀이를 통해 교육하는 이유는 놀이는 아이들의 일상생활이며 그 자체가 학습활동이 되어 놀이를 통해 정신적인 즐거움을 맛보게 되며, 다양한 감각 능력과 기능을 습득함으로서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놀이의 방법으로 캘리그래피를 적용할 수 있다. 캘리그래피(Calligraphy)란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이다. 원래는 ‘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 Kalligraphia에서 유래된 말이다. Calli는 미를, Graphy는 화풍, 서풍, 서법, 기록법의 의미를 갖고 있다(시사상식사전). 우리나라는 먹물을 묻힌 붓을 한 번의 획으로 써 내려가는 것을 예술로 여겨 서예, 일본은 이를 도의 경지라 하여 서도, 중국은 정해진 법칙대로 쓴다 하여 서법이라 칭한다. 서양의 경우, 동양권과 다르게 한자의 사용이 아닌 알파벳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글씨를 쓰는 도구나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서양의 서예는 웨스턴 캘리그래피(Western Calligraphy)라고 부른다. 사실, 캘리그래피는 문자로서의 의미 전달 뿐 아니라, 조형미를 갖춘 예술로서의 역할도 한다. 문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태, 유연하고 동적인 선, 살짝 스쳐가는 효과, 글씨의 굵기, 여백의 균형미 등 순수 조형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뜻한다. 캘리그래피의 발전은 15∼16세기 이탈리아 문화에서 중세의 고딕적 경향이 물러가고, 예술의 자율을 존중하는 시대가 오자 많은 서예, 출판, 유통과 과정이 함께 활발해 졌다. 즉, 개성적인 표현과 우연성이 중시되는 캘리그래피는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 있는 글자체이다. 캘리그래피는 기계적 입력이 아니라 자신의 손과 손의 힘을 직접 조절하고, 펜이나 붓을 자신의 통제 안에 두는 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21세기는 감성이 뛰어난 창의적 인재를 기대하며 긍정의 마음과 남을 배려하는 능력 등을 필수적으로 꼽고 있다. 따라서 어렸을 때 감성을 깨우며 그러한 능력을 길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받아들여 가슴으로 충분히 느끼며, 상호 작용하여 내면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