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년 세모뇨프스키 광장에는 스물여덟의 꽃다운 젊은이가 스무 명의 사형수들과 함께 기둥에 묶여 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영하 50℃의 추운 날씨. 세찬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가운데 광장은 몰려든 구경꾼들로 가득합니다. 집행관이 소리칩니다. “마지막으로 5분을 주겠다.”

동지들과 독서토론 모임, 즉 반체제 활동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겁니다. ‘친구들이여! 먼저 세상을 떠나는 나를 용서하시오.’ 생각을 더듬는 동안 다시 소리가 들립니다. “남은 시간 3분!”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지요.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 일분일초를 아끼며 살고 싶다.’ “이제 마지막 1분!” 저승사자 같은 집행관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 매서운 바람도 냉기도 느낄 수 없다니. 모든 것이 너무 아쉽다.’ 격렬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자! 이제 사형을 집행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군화 소리가 들립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이윽고 “철커덕!”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형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최후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탕!” “탕!” “탕!”세 명의 죄수가 목숨을 잃은 상황. 멀리서 고함이 들립니다. “멈추시오!”

광장 끝에서 하얀 깃발을 펄럭이며 병사 한 명이 사형을 중지하고 사형수들을 시베리아로 유형 보내라는 황제 친서를 들고 옵니다. 기적입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옙스키 청년 시절 실화입니다.

사형 집행 중단 사건은 황제 니콜라이 1세가 기획한 의도적인 연출이었지요. 물밀듯 들어오던 서유럽 사상을 두려워한 황제는 러시아 지식인들을 위협하고자 이런 장면을 연출한 것입니다. 사정을 모르는 젊은 도스토옙스키는 그날 경험을 평생 자산으로 삼아 치열한 삶의 태도를 갖습니다. 유형지에서 4년을 보내는 동안, 사형 집행 직전의 5분을 떠올리며 매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순간처럼 소중하게 살아냈던 것이지요.

혹한의 날씨, 무거운 족쇄를 차고 생활하는 비참한 유배지에서의 삶이었지만, 그는 창작 활동에 몰입했습니다. 상상의 원고지에 상상의 펜으로 한 줄 한 줄 글을 썼습니다. 유배 생활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온 후에도 도스토옙스키는 ‘인생은 5분의 연속’이라는 각오로 치열한 글쓰기에 매달렸고 188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영원한 만남’, ‘백치’, ‘학대받은 사람들’ 등의 작품을 인류에게 선물했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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