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일본 아베 정부가 결국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달 28일부터 발효가 예정된 이 조치로 인해서 수출 규제 대상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서 857개 품목으로 늘어났다. 사실상 거의 모든 산업으로 확대된 데다가 일본 정부가 어떤 품목을 정밀 타격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까지 겹쳤다.

한일 경제갈등의 시원(始原)은 지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일본과 문재인 정부의 인식 차이이다. 협정 제2조 1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중략)…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돼 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일본은 개인 배상문제를 재론하는 것 자체를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문에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핵심 논거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식민지배’ 자체에 대한 배상 판결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것이어서 간단히 이해할만한 내용은 아니다.

일시적 반일감정으로 펼쳐지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아베에 대한 성토, 길거리를 메운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당장은 속 시원한 장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슬기로운 해결책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이 한국제품 불매운동에 대대적으로 나서면 우리 경제는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들이 또다시 모진 고초를 겪는 것은 아닐까. 이번 사태는 결국 ‘외눈박이’ 정권이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 시련이라는 느낌이 든다. 문 정권의 이념정책 성향은 실사구시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이 그렇고, ‘소득주도성장’이 그렇고, ‘탈원전’이 그렇고, ‘최저임금 폭증’이 그렇다. 명분으로 따지면 하나같이 그르지 않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되는 게 도무지 없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상위법인 국제협약이기 때문에 존중돼야 한다는 견해를 말하면 곧바로 “한일합방도 존중돼야 하느냐”며 ‘친일파’ 멍에를 덧씌운다. 작년 10월 대법원판결 이후 일본과의 협상을 통해서 한일청구권협정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충돌을 피했어야 한다고 말하면 “네가 정권 잡아서 잘 해 보라”는 식의 마구잡이 핀잔이 돌아온다. 그 무지막지한 확증편향의 비논리적 이념무장이 작금 사태의 뿌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국정의 무한책임을 떠안고 있는 정권의 외교적 무능은 치명적이다. 반정(反正)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는 ‘과거청산’을 내걸고 중립외교를 추구했던 광해군 때 인사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명·후금(청)과의 외교 교섭을 전담해온 평안감사 박엽(朴燁), 의주부윤 정준(鄭遵)까지 처형했다. 그리고 치욕의 병자호란을 불러들여 삼천리강산을 피로 물들였고, 자신도 눈보라 치는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굴욕을 겪었다.

국회 방일단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온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한국이 반복해서 일본의 상처에 손을 넣고 자꾸 후벼대는 것 아니냐는 비유를 하더라”고 일본 민심을 전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핑계만 무성했지 한일 관계를 이토록 악화시킨 책임에 대해서 사과를 앞세우는 위정자들을 본 적이 없다. 지금 국민들은 밖에 나가서 못난 짓을 하다가 실컷 얻어맞고 돌아와 줄기차게 ‘남 탓’만 거듭하는 찌질한 자식을 보는 부모의 애타는 심정일 것이다. 외교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 교실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문재인 정권은 무려 8개월 동안 도대체 무슨 대비를 해왔는지 거듭거듭 묻고 싶다. 수상한 그림자의 실체가 갈수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