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수 수필가
강길수
수필가

잿빛 구름에 물방울이 송송 숨었다. 물방울들이 언제 구름을 모아 땅에 장맛비로 내릴지 알 수 없다. 비는 논밭을 일깨우고, 산을 더듬고, 강도 만지고, 바다를 간질일 것이다. 무엇보다 도시의 오염된 공기와 집, 도로와 공원을 씻어 내리리라. 사람들은 비 안 맞을 준비를 하고 나들이를 한다.

자전거 뒤에 우산을 싣고 출퇴근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장마철이어서 그렇다. 오늘 출근길도 자전거 페달이 가볍다.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매일 두던 곳에 세우고, 우산을 내려 사무실에 가지고 올라갔다. 점심때가 가까워져 창가로 가 하늘을 살폈다. 구름 상태가 점심 먹고 오는 동안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산을 가지고 내려가 자전거 뒤 짐받이에 실었다.

다른 일이 없는 한, 집에서 점심을 한지 꽤 오래되었다. 돈이 절약될 뿐 아니라, 운동도 되기 때문에 일석이조다. 점심 후 다시 사무실에 갔다. 자전거를 제자리에 두고, 우산을 내리려 끈에 손이 갔다. 그 순간, 장난스러운 생각이 튀어나왔다. ‘누가 가져가지 않을 것이란 사회에 대한 내 믿음을 우산으로 실험해 보자!’는 마음이 불쑥 든 것이다. ‘우산도 새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뒤따랐다.

기실, 우산은 손잡이를 세게 당기면 아랫부분의 대가 쑥 빠져나오는 헌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새것이나 진배없는 아니, 새 우산보다 더 귀한 것이다. 전에 아내가 ‘대가 고장이 나서 못 쓰게 되었는데, 천이 좋고 살이 튼튼해 버리기가 아깝다’고 했던 우산이다.

어느 날, 펜치와 드라이버로 고장 난 곳을 누르고 조정하여 당겨도 잘 빠지지 않게 고쳤다. 그 후 우산은 내 전용이 되다시피 했다. 아랫대를 적당한 부위까지 당겨서 쓰면 아무 지장이 없었다. 바람이 세게 불며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갈 때가 백미다. 대가 빠져 우산이 날아갈 수 있다는 긴장감 속에, 신경 모아 걷는 남모르는 스릴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산을 자전거에 두고 사무실에 올라온 지 두 시간 정도 지났다. 물이 마시고 싶어, 잔에 물을 따라 창가로 가 마시며 자전거를 내려다보았다. 저만치 서 있는 자전거 짐받이에 있던 우산이 없어진 것 같이 보였다. 어찌 보면 있는 것도 같았다. 시력 탓이다. 당장 내려가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일었다. 하지만, ‘삼만 불 국민소득의 우리 사회인데, 퇴근 때까지 믿고 두고 보자’란 마음이 그 생각을 주저앉혔다.

퇴근 시간이다. 얼른 컴퓨터를 끄고, 문단속한 뒤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나서며 눈이 저절로 길 건너 자전거를 보았다. 우산이 없었다. 실망한 마음으로 자전거에 갔다. 앞뒤 두 끈을 풀지도 않고 그대로 우산만 쑥 빼 가버렸다. 마른 물티슈 끈이다. 우산 빠진 구멍이 일그러지지도 않고 텅 빈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우산이 따라가기 싫었던 것일까. 아직도 못 떠난 우산의 잔해가 끈을 받치고 있단 말인가. 시나브로 끈을 풀어 다시 조여 매는 내 손가락은,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정든 우산이 아까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사회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지금껏, 자전거나 차량에 싣고 온 물건은 언제나 필요한 곳에 갖다 두면서 살았다. 쓰기 위함이었지만, ‘작은 불찰로 남을 도둑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마음도 있었다.

오늘 즉흥 코미디 같이 해버린 이 실험은, 첫 도전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늘 물건을 챙기던 습관과 생각이 옳았다’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일회성(一回性) 실험으로 사회를 판단한다는 것은 도리에도, 이치에도 합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통계학적으로도 옳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산 없어진 빈 자전거 짐받이를 처음 보았을 때, 가져간 이가 미운 마음이 든 것도 맞다. 그러나 우산 하나로 사회를 시험해 보려 했던 어설픈 실험자 곧, 원인제공을 했던 내가 더 문제였다는 생각에 이르자 미움도 금방 사라졌다. 정말 우산이 필요한데 살 수 없어서, 남의 것을 뽑아 갔으리라고 이해하는 마음도 뒤따랐다. 나아가, 우산이 그 사람에게 요긴하게 쓰이기를 바라는 바람도 생겼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이다. 낮의 우산 사건을 되돌아본다. 왜 그 순간 충동적인 우산실험이 떠올랐을까. 아마 나도,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가 변해가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지 싶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상식과 이성(理性)이 마비되어가는 어지러운 사회다. 이리저리 공동체가 부서져 흩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가면 쓴 보이지 않는 손이, 뒤에서 무언가 나를 주무르며 시험하는 느낌도 드는 요즈음이다. 그러니 내 무의식도, 우산실험이란 돌연변이를 투사(投射)한 것이리라.

우리 사회는 지금, 한 번도 겪지 않은 일회성 실험을 당하며 사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