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에 혹독한 기근을 겪었다.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다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었다. 북한은 이때를 ‘고난의 행군’시기로 규정한다. 고난의 행군이란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하던 김일성이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혹한과 굶주림 속에서 100여 일 간 행군을 했다는 데서 나온 말인데, 1995년부터 극심해진 경제난에 따른 체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벌인 캠페인의 구호로 쓴 것이다.

당시 아사자의 수는 발표 기관에 따라 수십만에서 수백만으로 격차를 보이고 있으나, 국내외 시민단체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증언한 내용에 따라 3백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저들은 사회주의 시장의 붕괴, 잇단 자연재해,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열강들의 대북 고립·봉쇄·압살 정책을 주요 원인으로 꼽지만, 체제유지와 선전을 위한 각종 건설사업과 핵·미사일 등 무기개발에 경제력이 집중된 것도 그에 못지않은 요인이었다.

북한의 1990년대 대기근은 1995년의 대홍수로 촉발되기는 했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만성적으로 누적된 식량문제가 더 큰 원인이었다. 북한이 1997년 6월 유엔에 보고한 자체 경제평가에 따르면 1인당 GNP가 1989년 911달러를 정점으로 하강국면에 접어들어 1995년에는 239달러에 불과했다. 북한경제는 홍수피해 이전에 이미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었고 1980년대 후반부터 식량사정이 악화되기 시작하여 1993년에는 식량자급률이 58.7%를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식량난을 겪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100만t 정도가 부족했던 식량난은 1990년대 초에 200만t으로 늘어났고 이처럼 누적된 식량난이 자연재해를 계기로 악화되면서 대재난을 초래했던 것이다.

현 정부 들어 한국의 경제도 악화일로다. 청년실업자는 늘어나고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속출하는 것에 이어 지난 일분기 GDP는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백색 국가)에서 제외되는 경제보복까지 목전에 두고 있다. 화이트 리스트란 일본 정부가 물자, 기술, 소프트웨어 등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관련 절차를 간소하게 처리하도록 지정한 물품 목록을 의미한다. 일본은 수출의 효율성을 위해 우방국을 화이트 리스트 국가로 지정해 우대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 우호국 성격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경우 물품뿐 아니라 지식·기술 교류도 제한될 수 있다. 일본의 이번 조치로 수출입뿐 아니라 양국 기업 간의 기술 협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다양한 기술·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일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기술을 이전받아왔지만 2000년대 들어 일본 기업과 다양한 수평적 기술제휴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전기·전자와 철강, 기계 등 분야에서 대기업 간 기술제휴 등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만약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현실화되면 이 같은 기술교류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이 정권의 대응태도에 기시감이 있다. 이 판국에 국채보상운동이니 죽창가니 이순신의 열두 척 배니 하는 황당한 소리가 나오는 것은, 마치 북한이 정책의 실패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과 불신을 ‘미제 승냥이들’과 ‘남조선 괴뢰도당’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으로 덮으려는 것과 닮아 보인다. 북한은 지금 핵무기를 포기하면 모든 규제를 풀고 원조를 하겠다는 제안을 거부하고 또 다시 고난의 행진 운운하고 있다. 체제와 제 목숨의 부지를 위해서는 수백만 인민의 목숨쯤 희생해도 좋다는 저의가 엿보인다.

치열한 국제경쟁의 시대에 낙오하지 않으려면 독불장군으로는 안 된다. 다른 불순한 저의가 없다면 나라경제와 국익을 팽개친 감정적 대립은 국가의 경영자들이 할 짓이 아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서로 윈윈하는 우방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최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