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아, 덥다. 길지 않은 장마가 후딱 지나가더니, 푹푹 찌는 공기에 숨이 막힌다. 주룩주룩 내리던 장맛비도 야속하더니만, 염천 무더위에는 짜증마저 겹친다. 섭리에 따라 들판 곡식을 익히는 손길이겠거니 차라리 기대를 건다. 이 여름을 힘들게 하는 또 하나 심통받이가 있다. 국민의 답답한 심정은 아랑곳이나 하는지 백날도 훨씬 넘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세금도둑들이 있다. 국회라 이름하는 이 나라 입법부는 하마터면 개점휴업 상태로 달을 또 넘길 뻔하였다. 그러다 불현듯 새 달을 맞으며 모여 앉겠다고 하니, 그나마 기대를 걸면서도 안심하는 국민은 많지 않아 보인다. 추가경정예산을 정말로 처리할 건지, 진실로 국가안보를 걱정이나 하는지, 일본이든 북한이든 문제해결에 진정성은 실린 거인지 의심부터 드는 것은 더위 탓일까.

모양만 갖추고 또 헛발질로 눈가림할 양이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길 바란다. 지진으로 무너진 포항의 이웃은 어느새 일곱 번째 계절을 천막에서 맞는다. 속초 산불이 할퀴고 간 산하에는 이미 초록이 무성한데, 무너진 백성들은 나라의 도움 그 냄새도 맡은 적이 없다.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들은 지역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대표한다는 일. 지역을 보살핀다는 생각. 공수표에 공염불이었는가. 몇십만씩 되는 표를 모아 당신을 밀어준 유권자들에게 아직도 세울 낯이 있는지 누군가는 물어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에 엉뚱하게 경제로 시비를 거는 저들의 공격에도 한 목소리를 못 내지 않는가. 뜨거운 햇볕에 살갗을 태우다가도 당신들만 생각하면 솟아오르는 짜증이 곱절을 넘긴다. 이글거리는 땡볕보다 뜨거운 기대가 그래도 당신들에게 걸려있음은 가련한 백성의 운명인가.

일본. 질긴 악연이며 징한 이웃이다. 가까이에서 자극이 되고 도전이 되어 감사해야 하는가. 역사를 부끄러워 아니하는 그 마수가 언뜻 보일 때면, 강점기 기억이 송두리째 다시 돋는 일본의 심장. 21세기에도 도로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되어 남의 땅을 기웃거리겠다는 후안무치한 국가. 침략이 아니라 확장이었으며 수탈이 아니라 도와주었다고 강변하는 질긴 도둑의 마음. 상상하기도 싫지만 경계하는 마음은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이웃 섬나라. 나라의 국격과 자존심 쯤이야 돈으로 너끈히 사고팔 수 있다는 약삭빠른 계산 속. 경술국치(庚戌國恥)도 뜨거운 여름 날 자행되었었지. 그럼에도, 한 마음이 되지 못하는 우리네 마음은 또 무슨 조화일까. 이게 이념의 문제인가, 좌와 우가 다를 일인가. 척을 지며 나뉠 일이 더러 있을 손, 일본의 공격 앞에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백년 전 우리가 아니다. 그들도 그때 그들이 아니다. 세상도 그 세상이 아니며, 이웃들도 모두 다른 모습이다. 디지털환경과 글로벌시장이 펼쳐진 오늘, 호락호락 힘에 넘어갈 일이 없어는 보인다. 힘도 그 때 힘이 아니라, 돈이 더 무서운 힘이 된 세상에 역사를 경제로 밀고 들어오니 다짐도 새로워야 한다. 논리도 분명해야 하고 뒷심도 넉넉해야 한다. 아마도 다음 목표는 독도가 되려는지. 즐비할 언덕과 구비를 힘겹게 넘으면서 그 모든 기억을 간직해야 한다. 가는 길이 더디더라도 탄탄하게 다지며 걸어내야 한다.

여름 한 가운데 땀을 닦으며 다짐하는 오늘의 각오가, 허세와 허명으로 나라를 잃었던 그 날의 수치를 씻고도 남아야 한다. 그래서, 해방 전 윤동주(尹東柱)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기도하였으며, 나라를 찾은 한참 후 신동엽(申東曄)은 아직도 ‘껍데기는 가라’고 노래하였을까. 폭염에 지친 오늘도 문제지만, 어느 계절을 닮은 나라를 물려줄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나라는 당신의 마음에 달려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