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지난 7월 27일은 한국전쟁이 멈춰선 날이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해 1953년 7월 27일 총성이 그친다. 하지만 그날은 전쟁을 종결한 날이 아니라, 전쟁을 멈추겠다고 결정한 날이다. 그래서 종전(終戰)협정이 아니라, 정전(停戰)협정이나 휴전(休戰)협정이라 한다. 정전협정은 유엔군 총사령관 클라크 대장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및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 팽덕회 사이에 체결됐다.

“귀하의 총체적인 지휘를 받게 되어 영광”이라며 이승만이 1950년 7월 14일 국군통수권을 맥아더에게 이양한 탓에 한국군은 정전협정 당사자 자격조차 없다. 그렇게 체결된 정전협정이 66년 계속되고 있다. 역사상 이토록 길게 이어진 정전협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20세기 미완의 전쟁이 21세기에도 진행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

하지만 대다수 한국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오래 전에 일어난 남의 일쯤으로 간주한다. 국사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여긴다. 그럴 수도 있을 법하다. 사람은 개별적인 경험으로 많은 것을 판단하므로. 정전협정을 생각하니 ‘고지전(高地戰)’(2011)이 떠오른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작가 박상훈이 각본을 쓰고, 장훈이 감독한 영화 ‘고지전’. 신상옥의 ‘빨간 마후라’(1964), 김기덕의 ‘남과 북’(1965), 정지영의 ‘남부군’(1990), 강제규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 같은 한국전쟁 영화가 있지만, ‘고지전’은 전혀 다른 영화로 다가온다. 다른 영화들은 낭만, 자유, 외세, 가족주의를 내세움으로써 6·25 남북전쟁의 본질을 천착하지 않는다.

“한국전쟁의 모든 기록은 1951년 1·4 후퇴와 휴전협정으로 끝난다.… ‘한국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고지전’은 그것의 끝 이야기이다.”

박상연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1951년 1·4 후퇴 전까지 사망자는 100만이었지만, 휴전협정이 진행되는 동안 사망자는 300만에 달한다. ‘고지전’은 1953년 7월 26일 밤 10시 이후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7월 27일 오전 10시에 휴전협정이 발효되기 때문이다. ‘애록고지’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남-북한군. 안개 자욱한 한밤중에 인민군이 ‘전선야곡’을 부른다.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유호가 가사를 쓰고, 박시춘이 작곡하고, 신세영이 불렀던 불후의 ‘전선야곡’. 안개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한국군 병사들도 ‘전선야곡’을 함께 부른다. 조금만 지나면 어머니의 흰머리를 쓸어안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불과 12시간이 지나면, 그때까지만 안개가 버텨준다면 서로 죽이고 죽지 않아도 되고, 살아서 고향으로 달려갈 수 있다. 그런 애절한 심사를 담은 ‘전선야곡’이 고요히 흐른다. ‘고지전’은 6·25 한국전쟁의 본질을 보여준다. ‘땅’을 쟁취하려는 전쟁, 6·25를! 적군보다 높은 곳을 차지해 유리한 위치에서 적을 섬멸하고 땅을 얻으려는 전쟁. 그래서 제목이 ‘고지전’이다. 얼마간의 땅이라도 빼앗거나, 혹은 빼앗기지 않겠다고 남북의 숱한 청춘들이 죽어 나갔던 정전협정 당일 새벽과 오전까지 벌어진 ‘고지전’을 보여준 살 떨리는 영화. 거기서 들려오는 화장기 하나 없는 노래 ‘전선야곡’의 뼈를 저미는 전율과 슬픔. 정전 66년이 지나간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닦은 길을 문재인 대통령이 이어나가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휴전선을 넘나드는 기막힌 장면을 연출하는 2019년. 지구촌 마지막 남은 분단의 장벽을 이제는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나는 2019년 한여름. 그러하되 장구한 세월 분단과 북풍으로 장사하여 잇속을 챙겨온 수구세력과 보수정당, 야바위꾼들과 아베의 극우세력이 우리의 바람을 흔들어댄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거기에 우리 민족과 어린것들의 명운과 미래가 달려있다. 부디 희망의 녹음이 나날이 짙어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