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가전업체 서비스센터
단기 엔지니어 인력 채용
사무직 직원 현장 투입 등
여러 대비책 마련했지만
수리기간 대부분 일주일 넘겨
애꿎은 소비자들만 ‘발동동’

#. 포항시 북구 장성동에 거주하는 김정식(37·가명)씨는 지난 29일 이른 아침, 아내의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밤사이 냉장고가 고장나며 냉동실에 보관하던 식재료들이 모두 녹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김씨는 가전제품 서비스센터의 업무시작 시간인 오전 9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곧바로 전화를 했다.

그러나 전화연결은 쉽지 않았다. 주말새 김씨처럼 가전제품 고장을 겪은 수많은 고객들의 문의가 이어졌던 탓이다.

김씨는 수차례 콜센터 ARS 안내음성을 통해 “먼저 전화온 고객을 상담하고 있으니 오후 3시 이후에 전화해달라”는 멘트를 들었다. 1시간여 동안 통화를 시도한 끝에 겨우 서비스센터 직원과 통화를 한 김씨는 더욱 황당해졌다. 고객문의가 폭주해 일주일 후인 8월 5일 이후에나 수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시가 급했던 김씨는 하루라도 빨리 냉장고를 수리해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서비스센터 측은 다른 고객들의 접수가 밀려있어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씨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냉장고 없이 어떻게 일주일을 넘게 보내냐”며 “서비스센터 수리를 기다리는 것보다 새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7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에어컨, 냉장고 등 여름철 냉방기기의 높아진 사용빈도만큼 제품이 고장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가전업체 서비스센터 직원들의 주 52시간 근무제가 처음으로 적용되면서 전례 없는 ‘서비스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2018년 한 해 동안 에어컨, 냉장고 관련 소비자상담은 1만5천223건으로 2017년 1만4천785건 대비 2.96% 증가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가전업체들은 여름철마다 높아지는 고장·수리 수요에 대비해 서비스센터 수리 기사에게 야근이나 주말 연장 근무를 독려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그런데 주 52시간 근무제의 영향으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삼성·LG전자는 각각 1월과 5월에 서비스센터 직원이 300인 이상 대기업 직원으로 정규직화되면서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대상이 됐다.

이에 따라 주말과 야간 근무가 불가능해지며 각 사는 7월 들어 혹서기 수요급증에 따른 서비스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가전업체들은 사무직 가운데 현장 서비스 업무 경험이 있는 직원들도 고객 대응에 직접 투입하고 수리·점검 기사들의 근무시간을 조정했다. 또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서비스 직원들을 대상으로 ‘현장 출퇴근제’를 실시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센터 운영시간을 수리 요청이 많은 평일 운영시간을 1시간 늘리는 대신 토요일 운영시간을 기존 오후 6시까지에서 오후 1시까지로 줄였다.

또한 에어컨 수리가 가능한 서비스 기사를 늘리기 위해 올해 초부터 세탁기와 냉장고에 특화된 가전기사를 대상으로 에어컨 수리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해 에어컨 수리 용량을 대폭 늘렸다.

LG전자의 경우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400명의 단기 엔지니어 인력을 채용해 현장에 투입했다.

또 서비스 엔지니어들에게 이달 말까지 2천여대의 신규 차량을 공급하고 안전모와 안전화, 보안경, 위험물 보관함, 안전펜스 등 안전 장비도 순차적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한 가전업체 서비스센터 관계자는 “냉장고, 에어컨과 같은 냉방기기는 해마다 폭염이 극에 달하는 7월에서 8월이 가장 고장이 잦다”며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근무시간 조정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고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대비책을 마련했지만 한꺼번에 몰린 수요를 신속히 처리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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