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투트가르트는 집만큼이나 나무도 많아 푸른 바람이 쌀랑쌀랑 불어온다.

△도시 공간 혹은 도시 장소

도시의 바람이 도시에 갇혀 유령처럼 떠돈다. 자전거를 탔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무거운 바람이 불었다. 시원하지 않았다. 중간에 몇 줄기의 비를 맞았음에도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더운 날이다. 더운 날의 도시는 정말 최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도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주공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우주장소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역시 도시공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도시장소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약속장소라는 말 대신 약속공간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때, 곳, 등장인물 등을 알려주는 연극의 무대지시문에서 ‘곳’은 장소로 바꿔 쓰기도 하지만 공간으로 쓰는 법은 없다. ‘곳’은 장소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나 공간을 뜻하는 순우리말은 없다.

이것은 중요한 점을 내포하는데, 우리는 공간보다 장소를 더 익숙한 ‘말’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단지 언어적인 측면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주공간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며, 도시공간은 우리 삶의 공통적이고 일정한 패턴을 찾을 수 없는, 익숙해지기 어려운 곳이다. 도시 전체를 이야기할 때는 공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도시 속에서 나의 생활주거지는 공간이라는 말 대신 장소라고 부른다. 공간은 언어적로도, 공간의 실제적 대상으로서도 우리와 익숙하지 않다.

공간과 장소의 차이는 비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공간과 장소에 대해 깊이 탐구한 사람은 중국계 미국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공간과 장소’에서 이 문제를 방대하고도 치밀하게 다뤘다. 매우 복잡한 공간과 장소의 차이를 단순화 하면 그 핵심에는 시간이 놓인다.

장소는 공간과 달리 시간이 작용하는 곳으로 시간과 함께 지내온 추억이나 흔적이 묻어 있다. 공간은 인간이 들어서기 위한 빈틈이지만, 장소는 그 공간을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어 친숙하고 익숙해진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자면 공간과 장소를 나누는 핵심적 요소는 시간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다시 말해, 공간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객체에 사심 없이 열려 있지만, 장소는 인간을 향해서 열려 있다.

공간이 장소로 변화하는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시베리아 유목민들의 집짓기일 것이다. 그들은 나무를 세워 집의 형태를 만들고 거기에 짐승의 가죽을 두른다. 건축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기도 한 함성호는 이렇게 썼다. “나무를 둥그렇게 모아 세우는 것은 곧 시간을 세우는 것이고, 거기에 짐승의 가죽으로 덮는 것은 공간을 두른다는 의미다. 즉 시간을 세우고 공간을 둘러서 우리가 사는 3차원의 공간과 시간을 더해 사차원 시공간이 완성되는 것”이다.

1960~70년대까지 도시는 인간의 삶이 영위되는 공간이 아니라 산업이 활성화되는 공간이었다. 서구의 도시성립이 그러하듯 우리나라의 도시 역시 공장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사람들을 수용하는 공간이 도시였다.

사람들에게 도시는 일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컸을 뿐 생활을 하는 ‘장소’라는 인식은 낮았다. 산업화의 황금기가 지나면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도시의 성장은 멈추게 되었다.

멈춤과 함께 도시는 쇠퇴하게 된다. 종로와 을지로는 조명, 인쇄, 가구, 금형 등의 점포가 과거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70~80년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화했던 이 지역은 현재 서울의 중심부에서 가장 쇠락하고 퇴락한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런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젊은이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이균진, 2016).

공간으로 규정되었던 도시를 장소로 이전시키려는 노력을 도시재생(Regeneration)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도시개선 및 개발과 관계된 개념으로는 재정비(Renewal), 활성화(Revitalization), 재개발(Redevelopment), 재생(Regeneration)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0년대는 ‘재건’, 60년대 ‘활성화’, 70년대는 ‘재정비’, 80~90년대 ‘재개발’, 2000년대는 ‘재생’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재건, 재정비, 활성화, 재개발이 도시를 경제와 산업적 측면에서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공간’활용에 주목했다면, 도시재생은 도시를 인간의 생활과 활동에 중점을 두어 ‘장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슈투트가르트로 부는 푸른 바람

그렇다면 성공적인 도시 재생을 이뤄낸 도시로 가볼까. 슈투트가르트(Stuttgart)는 독일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전기, 자동차, 정밀기계, 광학기계, 출판업 등이 활발한 공업도시다. 그런데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의 도시이기 때문에 기온역전 현상이 일어나며 오염물질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아 대기오염이 심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환경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일까? 슈투트가르트는 1970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우선 공장과 자동차 등 대기오염의 주원인에 대한 규제를 마련했다.

분지 안에 머무는 공기를 확산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는데, 이것이 ‘그린 유(U)’ 프로젝트로 우리나라에는 ‘바람길 조성 정책’으로 소개됐다. 이 프로젝트는 바람을 중심으로 생성, 수혜, 이동 지역을 구분하고 이를 관리하였다. 공기가 만들어지는 지역인 산지, 숲, 하천, 공원 등을 철저히 보존하였고, 이러한 바람이 이동할 수 있도록 공기의 흐름을 막는 건물 배치를 바꾸었고, 수로와 산책로 등을 통해 바람이 수혜지역인 도심으로 이동할 수 있게 했다. 도로주변에는 교목을 심고 도시 중앙부는 150m 폭의 녹지를 조성하여 바람통로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대기오염을 현저히 줄이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그 결과 슈투트가르트는 공업 도시보다 녹색도시로 더 유명해졌고, 경제적인 부를 얻음과 동시에 깨끗한 환경까지 유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05년 독일의 시사 주간지 ‘포쿠스’는 삶의 질 측면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로 이 도시를 뽑았다(전국지리교사모임, 2009: 188). 이를 통해 슈투트가르트는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었으며, 도시의 인지도가 올라가 이주하고 싶어하는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도시민의 삶의 질 역시 향상되었다. 따라서 슈투트가르트의 도시 재생은 단순히 도시 환경 개선에 그치지 않고 쇠락해가는 도시 전체를 재생시킨다는 생태적 도시재생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