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주 한동대 교수
김학주 한동대 교수

일본이 한국 반도체 업체에 소재 공급을 제한하겠다고 위협한 이후 이를 모면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생산설비를 미국으로 이전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됐다. 일본이 미국에 있는 설비에 대해 제재하기는 불가능하다. 일본경제가 미국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베가 그런 시나리오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6월말 트럼프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미국 이전을 희망한다고 언급했었다. 한편 일본은 중국에 있는 한국의 반도체 생산라인에도 소재 공급을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싫으면 피난처인 미국으로 가라는 이야기인가? 아베가 확실히 트럼프를 밀어주는 모습이다. 물론 그는 대가를 바란다. 미국의 통상마찰을 피해 보자는 것이다.

이는 정치가 경제에 간섭하기 시작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즉 이런 사태가 앞으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가 저성장에 돌입하여 먹이가 줄어들면 사람들도 동물의 본성을 갖는다. 약육강식이다. 이는 분명히 한국에게 불리하다.

만일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통상마찰을 피해 미국으로 설비를 이전하면 비용 상승은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반도체의 경우 수요처, 즉 전자제품 조립업체, 그리고 부품공급 인프라가 모두 아시아에 몰려 있다. 미국으로 생산설비를 이전할 경우 품질관리를 위해 부품공급 인프라를 미국으로 옮겨야 하고, 생산된 제품을 미국에서 다시 아시아로 운반해야 한다.

2000년대 중반 현대차가 미국, 중국에 생산설비를 만들었을 때 부품 인프라까지 현지에 구축했었다. 그런데 당시 자동차는 미국, 중국 시장을 확장하는 차원이었으므로 이런 투자가 정당화됐지만 반도체는 비용만 늘어나는 꼴이다. 반도체처럼 기복이 큰 산업의 경우 불황기에 이런 비용상승 요인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반도체 설비를 미국으로 이전하면 원화약세는 가속화될 것이다. 반도체가 우리나라 수출 가운데 20%를 넘게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증시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해외투자자들이 우리나라에서 탈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으로 갈 수 없다면 적어도 아베나 트럼프가 싫어하는 한국, 중국 이외의 지역으로 생산설비를 옮겨야 한다. 베트남이 떠오르고 있다. 따라서 베트남 투자는 고려할만하다.

정부는 이 기회에 반도체 소재를 국산화하자고 설득한다. 반도체 소재는 같은 재료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고, 공정마다 적용방법도 다르다. 즉 다품종 소량 생산이고, 여기에는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노하우(know how)가 숨어 있다.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그 동안 일본의 노하우를 싸게 이용했던 셈이다.

그렇다고 국산화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다. 소재를 개발하는데 3∼4년 걸리고, 그 품질을 인증하는데 1∼2년 소요됨을 감안할 때 우리가 자체 개발한 소재를 안심하고 쓰려면 4∼6년을 기다려야 한다.

위험한 것은 그 기간 안에 반도체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반도체 산업의 대표적 특징이 R&D 및 설비 투자 부담이 매우 크고, 변동비가 작다는 것이다. 즉 판매량을 한 단위 높일 때 추가적으로 늘어나는 이익의 규모가 급증한다. 따라서 수요가 늘어날 때 설비투자를 공격적으로 하여 그 수요를 따라갈 수 있으면 엄청난 돈을 벌게 되고, 그 돈으로 다음 세대의 기술을 선도할 수 있게 된다. 과거 삼성전자가 일본의 반도체를 넘어 선 것도 같은 방법이었다.

만일 향후 4∼5년간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가 온다면 미국 마이크론과 같은 경쟁업체가 공격적인 투자를 해서 주도권을 한국 업체로부터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 기간 동안 설비를 늘려도 소재 부족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대응할 수 없다. 즉 일본이 우리 경쟁력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불안하면 미국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