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아베의 극우 정치가 한일관계의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절반의 승리를 차지한 아베는 그의 정치노선을 더욱 강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집권 이후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다. 그는 일본 헌법 9조의 무력행사와 군사력 보유 금지 조항을 개정해 자위대 증강을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2006년 관방장관 시절부터 야스쿠니신사를 은밀히 참배하면서도 야스쿠니 참배가 결코 군국주의 강화는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것은 국가를 위해 희생된 사람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며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고 주장한다.

1954년생 아베는 친가, 외가 모두 일본 보수정치의 맥을 잇고 있다. 그의 외조부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며, 외종조부 역시 사토 에이사쿠 총리다. 그의 외사촌 기시 노부오는 참의원 출신이다. 그의 조부 아베 칸은 중의원이었고 부친 아베 신타로는 자민당 간사와 일본 외상을 지냈다. 아베는 1961년부터 1977년까지 세이케이 초중고, 대학을 나온 후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2년간 어학연수를 하였다. 귀국 후 그는 고베철강 조후제재소에 잠시 근무했고 외상인 아버지의 비서관으로 일했다. 그는 1993년 아버지 선거구 야마구치에서 부친의 명성과 인맥 금맥을 그대로 이어받아 중의원이 됐다. 그 후 그는 3선 총리가 되었으니 대표적 금수저 정치인이다.

아베가(家) 3대는 메이지 유신의 이론가들을 사상적 고향으로 삼고 있다. 아베가는 조슈의 인맥의 좌장 요시다 쇼인, 다가스키 신사쿠를 특별히 존경한다. 요시다 쇼인은 맹자의 철학을 실천적 행동철학인 양명학으로 해석하고 따랐다. 요시다 쇼인은 쇼카손쥬쿠를 세워 젊은이들을 제자로 삼았으며 이 학숙에서 배출된 인물들이 후일 명치유신의 주역들이 됐다. 이들 중에는 일본 막부정치 타도의 영웅 다가스키 신사쿠, 초대 조선통감을 암살된 이토 히로부미, 3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도 들어 있다. 아베는 고교시절 야마구치현의 다가스키 신사쿠의 묘를 참배하고 그의 이름에 신(晉)자도 다가스키 신사쿠에서 따올 정도로 그를 사상적으로 흠모하였다.

아베의 사상의 뿌리인 요시다 쇼인은 급진적 개혁을 시도하다 1859년 29세에 막부정권에 의해 처형당했다. 그는 천황중심의 강력한 국수주의적 중앙집권 국가건설을 꿈꾸었다. 그는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이 평등하다는 일군만민론(一君萬民論)를 주장하며 당시로서는 위험한 막부정치에 맞섰다. 그는 구미 열강과의 불평등조약에서 야기된 당시의 국가적 손실을 조선 만주 등 영토 확장을 통해 만회해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그것이 소위 조선반도 침략론인 정한론(征韓論)이 되었으며 그 뜻은 후일 그의 제자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실현된다. 쇼인의 제자 다가스키 신사쿠 역시 스승의 뜻에 따라 존왕양이 부국강병(尊王攘夷 富國强兵)의 철저한 옹호자가 된다. 결국 쇼카손쥬쿠의 야마구치 인맥들은 군국주의 명치유신의 계승자가 된다. 이 인맥에서 8명이나 총리가 되고 아베 역시 이 인맥의 일환이다.

이 야마구치 인맥은 명치유신을 통한 일본 근대화의 영웅이지만 우리 역사에는 국권 강탈의 주범이며 원흉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베의 이번 대한무역제재는 일시적인 단순한 선거용 책략 이상의 반한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의 보수우익들은 아직도 아베의 극우 국수주의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여론도 나쁘지 않다. 일본 청년들도 잃어버린 일본의 경제 침체를 극복하고 취업 천국을 이룩한 아베노믹스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극일(克日)을 위해 아베 정치의 사상적 뿌리를 철저히 분석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아베의 대한관(對韓觀)은 단순한 역사해석의 차이가 아니고 아베의 몸에 체득된 국수주의의 산물이다. 우리가 이러한 아베의 이러한 역사인식과 무모한 경제전쟁에 일치단결하여 대응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