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학교 가는 게 두려운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있습니다. 형편은 말할 수 없이 어렵고 공부는 따분했습니다. 숙제를 하지 않아 혼나고, 지각했다고 혼나고, 별 볼 일 없는 이 학생에게 학교는 가혹합니다. 결국, 어느 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원단 공장에서 가위질도 해 보고,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꾼으로도 살아봅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를 몇 년째. 소년은 이십대 청년으로 자랍니다.

고향 부산을 떠나 대구로 올라오면서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요. 온갖 밑바닥 인생의 굴곡진 모습을 여기에서 다 목격합니다. 사채업자, 노래방의 도우미로 일하는 여인들, 문신 가득한 조폭. 불법 온라인 게임 도박장 아저씨. 늘 야한 동영상을 보는 할아버지 등. 제대로 배운 게 없으니 청년의 맞춤법은 엉망입니다. 문장 한 줄을 써 본 적이 없습니다. 피시방의 월급은 60만원. 생계가 힘듭니다. 이때 외삼촌이 서울의 공장에 자리 하나를 만들어 소개해 줍니다. “특별한 기술은 없어도 돼. 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야.” 서울 성수동에 있는 주물 공장이었습니다. 500℃ 뜨거운 화로에 아연을 넣어 녹이고 나서 지퍼나 단추 등을 만드는 회전 금형에 천천히 붓는 작업입니다. 월급은 130만 원으로 오릅니다. 첫 월급날, 피자 한 판을 시켜 먹은 청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뿌듯한 밤을 보냅니다.

청년은 공장에서 벽을 바라보며 10년을 일합니다. 퇴근하고 자취방에 들어가면 고독이 엄습합니다. 어느새 나이 서른하나.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유머’ 커뮤니티에 들러 재밌는 이야기를 골라 읽는 취미가 생겼습니다. 가끔 댓글로 사람들의 창작물에 응원을 던지던 일자무식 청년에게 용기가 생깁니다. “나도 한 번 글을 써 볼까?” 청년은 인터넷에 검색하지요. ‘글 잘 쓰는 법’용기를 내서 이야기 한 편을 써 올립니다. 누구나 올리는 곳이거든요. 맞춤법이 하나도 맞지 않습니다. 재미없다고 욕먹을까 봐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후다닥 컴퓨터를 끄고 이불을 덮고 눕습니다. 출근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사이트에 접속해 봅니다. 글은 이미 게시물의 숲 속에 파묻혔습니다. 불과 몇 건의 조회 수. 청년의 눈이 동그랗게 커집니다. 댓글이 달린 거지요. “재밌어요.” 비록 네 글자의 짧은 댓글 하나였지만,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내 글이 재미있다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받아본 인정과 칭찬입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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