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러시아 전투기들의 23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침범과 러시아 정찰기의 독도 영공 침탈(侵奪)은 치밀하게 계획된 도발임이 확연해졌다. 러시아 정부가 24일 “독도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고, 자국 군용기의 비행항로를 방해하고 안전을 위협했다”는 내용의 공문을 우리 국방부에 보내왔다. 주한 러시아대사관의 차석무관이 “기기 오작동”이라며 사과했다고 밝혔던 청와대는 순식간에 우스갯감이 되고 말았다. 러시아는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청와대는 ‘갈팡질팡’하는 모양새이니, 이 나라 안보는 큰 구멍이 뚫렸다.

이번 사태에 대한 국방부의 일본만 공격한 브리핑은 차라리 코미디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최현수 대변인이 읽은 입장 자료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일본 측의 주장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라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이 자료에 영공을 침범했던 러시아를 규탄하는 내용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러시아의 엉큼한 오리발 공문을 받은 청와대의 후속 반응은 초라한 변명이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러시아가 입장을 바꿨다”고 말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러시아 무관의 말을 러시아의 공식 입장으로 해석한 배경부터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가 러시아의 공식 입장이라고 전제하지도 않은 개인적인 발언을 덥석 받아들여서 말도 안 되는 ‘기기 오작동’ 운운하면서 러시아가 사과한 것처럼 발표한 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25일에는 또 한 번의 파란이 일어났다. 북한이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북한은 이날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신형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동해로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은 오늘 오전 5시 34분과 5시 57분경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상 발사체 2발을 발사했으며, 비행거리는 약 430㎞”라고 밝혔다. 시중에는 벌써 “이번에는 군 당국이 몇 달 동안이나 ‘분석 중’이라고 할 것인지 궁금하다”는 야유가 쏟아진다.

러시아 폭격기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공을 두 차례 침범했고 중국 전투기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지 않았다. 영공 침탈 3시간 뒤에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당·청 행사에선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당은 당일엔 논평 한 줄도 없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안보는 어떤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인지 한없이 불안한 나날이다. 국가의 존폐가 걸린 위급한 사태에 직면한 형편에서 국민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는 하루빨리 미더운 대책을 내놓음으로써 점증하고 있는 국민불안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