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때아닌 친일공방이 한창이다. 여야가 서로 상대방을 향해 친일파로 낙인찍으려 안간힘이다. 논란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치에서 비롯됐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죽창가 등을 언급하며 반일, 일제불매운동을 선동하는 듯한 분위기로 흘러가자 자유한국당은 한일관계를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정부를 외교무능으로 몰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공개석상에서 자유한국당의 행태를 친일적 행각이라고 몰아세웠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최근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한국당이) 일본 정부가 이렇게 터무니없는 행위를 하는데도 일본 정부를 견제할 생각은 않고 친일적 언동을 하는 것은 참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며 “이런 비상시국에 자유한국당은 추경 처리는 물론이고 일본에 대해서도 친일적 행각을 계속해 정말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당의 친일적 언동이 무엇인지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인영 원내대표 역시 “한국당이 정부·여당을 향해 ‘철없는 친일 프레임에 집착하는 어린애 정치를 그만두라’고 했는데, 부당한 경제보복에 당당히 대응하는 것을 철없다고 하는 데 대해 참담한 심정을 느낀다”고 했다. 전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정부는 철없는 친일 프레임에만 집착하는 어린애 같은 정치는 그만 멈추고 제발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고 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이어 “한국당의 백태클은 신(新) 친일”“한국당은 일본을 위한 엑스맨”“한국당은 자책골 쏘는 팀킬” 등으로 발언 수위를 높이며 한국당을 비난했다.

친일공방에 불이 붙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황 대표는 당 차원의 일본 수출규제 대책 특별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해 정부와 여당이 한국당에 ‘친일 프레임’을 씌우는 데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황 대표는 “우리 당이 언제 일본에 굴복하자고 했냐. 특사 보내서 돌파구를 마련하자고 하는데 지적할 사항이냐”면서 “문제를 풀 고민은 없이 야당 비난에만 골몰하는 것은 참으로 치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청와대와 여당을 겨냥했다. 그러면서 황 대표는 친일 프레임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친일-반일 편가르기에 대비해 국민 여론을 올바르게 이끌어갈 방안을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

황 대표의 고민은 일본이 수출규제조치로 우리 기업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마당에 자칫 ‘친일 VS 반일세력’으로 편가르기를 할 때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성적인 판단이 앞서게 된다는 점 때문일게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분명히 국민과 국익을 위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이 중요하지만 감성적인 판단으로는 죽창가를 부르짖는 조국 수석의 선동정치에 비해 이목을 끌기 어려운 현실의 딜레마는 분명하다.

이쯤되자 나경원 원내대표와 민경욱 대변인이 함께 반격에 나섰다. 나 원내대표는 “친일 몰이나 하는 한심한 청와대”, “정부야말로 신 친일파”, “얼빠진 정권의 얼빠진 안보정책” 등으로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급기야 나 원내대표는 “친일파 후손들은 민주당에 더 많더라”며 민주당을 겨냥한 뒤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게 따지면 친일파 후손이 국가를 상대로 한 재산환수 소송 변호사도 하셨더라”며 민주당과 문 대통령을 싸잡아 친일파라고 비난했다. 민경욱 의원은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하와이는 미국 땅, 대마도는 몰라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인 뒤, 자신의 SNS에 이 사진과 함께 올린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아버지까지 거론하며 문 대통령을 친일파로 몰아세웠다. 일국의 대통령까지 친일파로 몰아가는, 끝간 데 없는 친일파 공방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여야가 서로에게 친일파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국민들에게 정치혐오를 불러올 뿐이고, 정치적 자살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화인이 된 친일파 공방, 여야 모두 자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