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옛 중국 한 노인에게 아끼는 말 한 마리가 있었다. 도둑이 들어 그 말이 없어졌는데도 노인은 오히려 ‘이게 좋은 일이 될지 누가 아느냐’며 태연하였다. 노인을 잊지 못한 그 말이 좋은 말 하나를 더 끌고 돌아왔다. 기뻐하는 이웃들에게 노인은 ‘이게 나쁜 일이 될지 누가 아느냐’며 경계하였다. 말타기를 즐기던 아들이 그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노인은 이번에도 ‘이게 좋은 일이 될지 누가 아느냐’며 안타까워하는 이웃을 오히려 달래주었다. 나라가 전쟁에 휘말려 젊은이들이 싸움터에서 죽어갔지만, 그 아들은 곁에서 노인을 보살펴 주었다. 시골 노인의 그 한 마리 말. 새옹지마(塞翁之馬).

한국과 일본. 갈등이 깊다. 해외 언론마저 사설로 다룰 만큼, 이번 한일통상마찰 사태에는 무역 관계 외에도 깊은 골이 함께 보인다. 두 나라 역사의 흔적과 경제 논리뿐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마저 함께 걸려있어, 스스로 헤어나오기는 어려울 모양이다. LA타임즈(LA Times)는 ‘한일무역갈등은 역사의 아픔을 품고 있다’고 하였다. 블룸버그(Bloomberg)통신은 ‘양국은 각자의 관점에 포획되었다’고 적었다. 특단의 해법이 필요하고 특별한 다짐이 요청된다. 일제강점기의 그림자가 아직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서, 우리는 어쩌다 이처럼 집요하고 사나운 이웃을 만났을까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할 터이지만, 이후에 일본과 또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지 귀추에 국민의 관심이 쏠린다.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이웃인가.

일본이 우리에게 수출하지 않겠다는 품목들은 오히려 그들도 다시 수입해 갈 완제품들의 원재료가 되는 물품들이라고 한다. 제한되는 원료들을 우리의 기술로 만들어 내는 날에는 일본이 오히려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될 터이다. 실제로 우리 정부와 업계는 연구와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이들 품목에 대하여도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또한, 일본이 무역에 있어 호혜적인 특혜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발상도 분명한 사실과 논리에 근거한 설명이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무대에서 일본이 오히려 설명과 설득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터이다. 뉴욕타임즈(NYT)는 ‘G20회의에서 자유롭고 공개적인 통상이 평화와 번영의 기초라고 천명했던 아베 수상이 이틀 만에 모호하고 불특정한 근거를 토대로 한국과의 교역에 제한을 가하였다’고 하였다. 이 어려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2차대전은 74년 전에 끝났지만, 일제강점이 남긴 그림자는 아직도 길다. 물리적인 조건들이야 전후 태반이 복구되고 개선되었지만 한국민들의 마음 속에 드리워진 상처와 아픔은 여전히 길고 어둡게 여러 갈래로 작동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일본의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하여 안타깝다. 전후 독일이 유럽에서 보여주는 참회와 회복의 노력에 비하면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친다. 우리에게도 일본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인식 가운데 부적절한 앙금을 혹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피해의식이나 패배의식은 물론 혹 일본이 우리보다 낫다는 식의 열등감은 이제야말로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역사와 문화뿐 아니라 경제와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나으면 나았지 손톱만큼도 모자란 부분이 이제는 없다. 글로벌시장에서 우리 상품이 절대우위를 더러 가지고 있으며 기술력과 정보력으로도 뒤질 바가 아니다.

세계와 씨름하던 중에, 뜻밖에 일본의 일격을 만난 셈이다. 지혜롭게 대처하여 슬기롭게 이겨내야 하며, 이후에는 오히려 더욱 믿음직한 이웃으로 만들어 갈 아량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이 위기는 기회가 될 확률이 높다. 새옹지마이며 전화위복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