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지난 7월 1일 시작된 일본의 경제침략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대한민국을 콕 집어서 일본이 자행한 경제보복이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도조 히데키가 주도한 진주만 공습에 비견되는 아베의 급습이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7월 21일 참의원 선거, 남북과 북미의 급속한 해빙과 평화체제 구축방안 논의에서 일본의 배제, 한국과 중국의 부상(浮上)에 따른 열패감 등등.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제기돼온 징병과 징용, 위안부 문제, 과거사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출신의 역사의식 없는 어리석은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체결한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문재인 정부와 아베의 대립과 각축, 일본 우익의 입맛에 맞는 수구적인 인물과 친일정당을 통한 한국의 정권교체, 트럼프와 제휴해 아베가 세계최강 한국의 반도체를 손보려 한다는 대리청정 주장도 난무한다.

모든 것을 합치고 거기 무엇을 덧댄다 해도 남는 문제가 있다. 일본과 일본인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151년 전인 1868년 명치유신(明治維新)으로 일본은 아시아 최초-최강의 근대화를 성취한다. 애국적이고 진취적인 청장년 지식인 계층이 위로부터 개혁을 강인하게 추진해나간 결과다. 과거의 낡고 무기력한 일본과 작별하고 새롭고 강력한 일본을 드러내려는 문구가 ‘탈아입구(脫亞入歐)’다.

후진동양(後進東洋)의 맹주 청나라를 부정하고, 선진서양에 의탁해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계몽주의를 수용한 일본. 근대국가의 이념과 내용을 혁신을 위한 방편의 전면에 내세우고 유럽을 배워 아시아를 탈피하려던 일본.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려 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열망이 ‘탈아입구’ 네 글자에 각인되어 있다. 나쓰메 소세키 같은 인물마저 러일전쟁의 승리에 도취하여 전염됐던 동북아 오리엔탈리즘의 원조 일본. 제국건설의 야망을 품은 그들이 실현한 식민주의는 유럽의 그것과 판이한 양상을 가진다. 그것은 가까운 이웃 나라들을 병탄(倂呑)하고 그 인민을 노예로 삼은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는 인접국을 병탄하여 그 나라의 인민을 노예화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웃 나라에 대한 도리이자 예의이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를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반목(反目)이 극에 달했을 때조차 그들은 태국을 중립지대로 삼아 유혈사태를 피한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논거로 태평양전쟁을 촉발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허다한 인민을 전장으로 내몰았다.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일제의 총알받이로, 탄광의 매몰사고로, 일본군 성노예로 죽어갔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우리는 일본 국왕에게 제대로 된 사죄 한 번 받아본 일도 없다. 그저 ‘유감’이니 ‘통석(痛惜)’이니 하는 수사(修辭)로 덧칠한 언어유희만 있었을 뿐.

이런 맥락에서 이토 암살 100주년인 2009년 8월 30일 일본의 정권교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탈아입구’ 대신 ‘탈미입아(脫美入亞)’를 외쳤다.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돌아오겠다는 선언. 일본의 정체성을 유럽과 미국이 아니라, 동북아에서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 그러나 성숙하지 못한 일본의 관변 민주주의, 무기력한 소수의 시민사회, 강력한 비판적 지식인 세력이 부재한 일본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폭발로 속절없이 무너져버린다. ‘탈미입아’ 역시 허공 중에 산산이 부서진다.

참의원 선거는 끝났지만, 일본군의 한반도 진군(進軍)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개정을 향한 아베의 백일몽은 진행 중이다. 아베와 일본의 극우세력을 대놓고 엄호하는 한반도의 정치 모리배와 정당과 언론의 칼춤도 끝날 줄 모른다. 강력한 시민사회와 비판적 지식인 세력,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국민의 나라가 아베의 꿈을 황당한 백일몽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