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이나 택배 수령 위해
비밀번호 공개하는 경우 많아
혼자사는 여성들, 주거 침입 등
각종 범죄 노출 우려 커
‘홀로족’ 안전대책 마련 절실

“비밀번호가 더이상 비밀스럽지 않아요”

포항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한모(22·여)씨는 최근에 ‘이상하면서도 두려운’경험을 했다. 연이은 학과수업과 밀린 리포트 과제 준비로 몸이 피곤해져 자신의 원룸집에서 초저녁부터 일찍 잠을 청했다.

잠이 든지 2시간여가 지났을까. 갑자기 초인종 벨소리가 연거푸 울렸다. 당시 한씨는 배달을 시키지도, 택배도 주문한 적이 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한씨는 문을 열지 않은 채로 “누구냐”고 물었다.

대문밖의 남자는 굵은 목소리로 “배달왔습니다”라고 했고, 한씨는 “배달시킨 적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뚜벅뚜벅’ 발소리가 멀어지고서야 한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여름 휴가철을 맞아 아파트와 원룸촌 등지가 안전사각지대로 대두하고 있다. 지역 원룸촌의 아파트는 대부분 관리실을 없애고 자동출입문으로 바꿨다.

하지만,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위해 설치해놓은 출입문의 비밀번호가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노출돼 있다. 특히 혼자사는 여성들은 예고되지 않은 외부인들의 출입에 민감해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전국에서 혼자사는 여성들이 범죄의 표적이 된 사례가 잇따라 발생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2일 오전 11시께 포항 장량동 일대 원룸촌. 이곳은 근래들어 원룸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며 남구의 오천·문덕 원룸촌과 함께 대표적인 원룸 주거지로 부상했다.

본지 취재진이 장량동 원룸촌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확인해 본 결과 10집에 3∼4집꼴로 비밀번호가 외부에 적혀져 있었다.

적혀진 유형도 다양했다. 테이프로 붙어진 홍보용 전단지 위에 비밀번호가 적힌 경우, 방번호가 적혀진 개별 우체통 옆에 비밀번호가 쓰여진 경우, 벽면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비밀번호가 노출된 경우 등이 확인됐다.

실제 적혀진 비밀번호를 누르자, 출입문이 열렸다. 만일의 경우, 범죄 의도를 가진 외부인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건물 내부로 출입이 가능한 셈이다.

물론, 각 방별로 2차적인 비밀번호가 있지만 출입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한 범죄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방비라는 분석이다.

원룸 거주자인 김모(33·여)씨는 “내가 알리지도 않았는데 원룸 현관문을 열고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밀번호 공개 이유는 원룸 주인이 거주자들과의 상의 끝에 비밀번호 공개를 결정한 경우이거나 특정 거주자들이 음식 배달을 빨리 받기 위해서나 택배 수령을 편하게 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비밀번호를 공개한 경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아파트처럼 호수를 누른 후 해당 거주자의 허락을 받고 출입할 수 있는 최신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다른 거주자 강모(34)씨는 “공개된 현관 출입 비밀번호가 악용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라도 아파트처럼 방문자를 영상으로 확인 후 출입을 허락하는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포항북부서 관계자는 “출입문 비밀번호를 노출하는 것은 범죄의 표적이 되겠다는 말과 같다. 특히 여자의 경우는 매우 위험하다”며 “모든 사고는 부주의하거나 방심하는데서 비롯된다. 범죄나 사고로부터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안전의식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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