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얼마 전 음식점에서 포항 12경이 인쇄된 종이 식판을 보았다. 시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포항 12경을 선정하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일부가 바뀐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2009년 포항시 승격 60주년 당시 선정했던 12경 가운데 몇 개가 금년 70주년을 계기로 교체된 것이다. 종전에 선정되었던 12경이나 이번에 선정된 12경 모두 선정될만한 곳이었다. 다만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번에 빠진 곳들의 경치에 하자가 생긴 것도 아니었을 텐데 빠지게 된 것은 아마도 자랑거리는 늘어났지만 12경을 고수하려는 숫자에 과도하게 얽매인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포항이 지속가능한 관광산업의 발전을 지향한다면 이러한 방식이 최선이었을 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거주지와 전혀 다른 경치나 문화, 유적을 보는 관광을 선호하였다. 예로부터 유명 경승지인 단양8경, 관동8경과 같은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에는 전국 어디를 가도 해당 지역 지자체 자신들이 자랑하고 싶은 10경, 12경을 선정하여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것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관광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취향이나 니즈를 무시한 채 관광지 공급자인 해당 지자체의 일방적인 정보 발신만으로는 해당 지역민은 물론이고 타 지역으로부터도 지속적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현대의 관광소비자들은 과거처럼 그저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무한경쟁에 지친 직장인들 중에는 새로운 것을 배워 정신적인 힐링을 얻으려는 학습파, 그저 맛난 음식이 있으면 최고라며 전국을 누비는 식도락파, 각종 체험에 도전하는 행동파 등 관광의 대상이나 형태는 복잡하며 회사, 동아리, 동창회 등 관광주체나 싱글, 커플, 가족, 단체 등 관광인원단위도 매우 다채롭다.

포항 12경에 집착하여 스스로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다. 굳이 숫자를 정한다면 탑10도 나쁘지 않다. 대신 포항은 이번 기회에 관광객들이 자기 취향에 따라 보고,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으면 한다. 포항에서 봐야할 곳을 포항 10경(景), 포항에서 배우고 느낄만한 곳을 포항 10학(學), 포항에서 직접 체험하며 즐길 거리를 포항 10락(樂)으로 선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것이다. 이를 위한 마중물의 역할을 위해 먼저 세 분야에 대해 시범적인 예시를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시민들마다 마음속의 10경, 10학, 10락은 다를 것이지만 이는 얼마든지 포항시가 시민 의견을 수렴하여 조정해 나가면 될 것이다.

먼저 포항 10경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호미곶, 내연산의 12폭포, 죽장 하옥계곡, 운제산 오어사, 경상북도 수목원, 영일대와 포스코 야경, 덕동 문화마을 숲, 환호공원 주변, 4.3㎞의 철길숲과 불의정원, 한반도 최동단 땅끝마을인 구룡포 석병리를 꼽았다. 포항 10학에는 장기읍성과 유배문화체험관,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과 포항지구전적비, 영일 냉수리 신라비와 고분, 칠포리 암각화군, 연일 중명자연생태공원, 포스코 역사관, 포항가속기연구소,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을 꼽았다. 포항은 석기시대부터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르는 정치, 충의, 환경, 경제, 신화 등 다양한 학습이 가능한 곳이다. 포항 10락에는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산책, 포항운하 크루즈 탑승, 포항 꿈틀로에서 문화예술 체험, 영일신항만 방파제에서 바다낚시, 칠포 재즈페스티벌 감상, 포항국제불빛축제 구경,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관람, 흥해 북송리 소나무숲 걷기, 동해안 최대 죽도어시장 탐방, 구룡포 대게와 과메기 먹어보기는 어떨까. 의외로 포항은 자랑거리가 풍부하다. 포항에서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관광프로그램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