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反日)’로는 ‘극일(克日)’ 못한다
‘반일(反日)’로는 ‘극일(克日)’ 못한다
  • 등록일 2019.07.21 20:07
  • 게재일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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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30년쯤 전 이야기다. 장기 해외취재 일정으로 일본 도쿄에 갔다가 만난 어떤 외교관(공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그는 “한국은 일본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대로라면 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것은 영원히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심각하게 말했다.

그가 밝힌 견해의 매듭은 이랬다. 당시 일본에는 ‘한국’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8천 명쯤 되는데,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일본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한국인들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분심(憤心)이 깊어 매사 감정이 앞서고 일본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대비하는 일에 서툴다는 얘기였다. 이웃하고 있는 두 집 중에 옆집에 대한 악감정에 휩싸여 비난하기에만 바쁜 집과 이웃집을 유리알처럼 샅샅이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집 중에서 유리한 쪽이 어디겠는가 하는 부연설명이었다.

일본의 야비한 무역보복으로 한국이 흔들리고 있다. 가뜩이나 나빠진 경제가 걱정인데, ‘침략’으로까지 묘사되는 일본의 경제공격이 또 얼마나 큰 피해를 몰고 오게 될 것인가 조바심마저 치솟는 중이다. 이 판국에 ‘죽창가’를 들먹거려서 비난을 샀던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이번에는 “2018년 대법원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선동 글을 또 올렸다.

지난 18일에도 그는 페이스북에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닌 ‘애국(愛國)이냐 이적(利敵)이냐’”라고 적었었다. 일본의 무역보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놓고 상황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끊임없이 천박한 진영논리의 오물통 속으로 우겨넣으려는 조국 수석의 어리석은 행위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도대체 그가 꿈꾸는 이 나라의 미래는 무엇인가.

집권 3년 차에 접어들어 나라 형편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집권세력이 일본의 무역보복을 ‘옳거니!’ 하고 정략적 차원에서 주물럭거리고 있는 모습이 얼비치면서 많은 국민이 분노를 키우고 있다. ‘토착 왜구’, ‘매국’, ‘친일’이라는 자극적인 ‘편 가르기’용 분열용어들이 난장을 치며 날아다닌다. 일본의 무역보복을 규탄하는 시위·집회가 일본대사관 부근에서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또다시 ‘닥치고 반일(反日)’의 광풍을 부채질하는 세력의 준동을 목도한다. 이성적인 해법을 촉구하는 이 나라의 민심을 모조리 ‘토착 왜구’의 감옥에 처넣으려는 비열한 흉계가 진행되고 있음이 틀림없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확정판결 이후 무려 8개월 동안 정부가 아무런 외교적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 의혹의 단서가 있다. 국민들은 지금 매국(賣國)과 만용(蠻勇)의 어둑한 골짜기로 무참히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한일 양국의 견해차가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을 테니 이를 해소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은 필수적이었다. 일본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해오리라는 것을 몰랐다면 ‘치명적인 무능(無能)’이다. 만약 알고도 정략적으로 악용할 궁리만 하고 있었다면 이는 직무유기를 넘어서 사악한 역적 범죄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향해서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

아마도 지금쯤 일본에는 ‘한국’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기만 명을 헤아릴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정치외교 영역은 물론 대한민국의 온갖 시시콜콜한 것들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풍부한 이웃집에서 걸어온 간단찮은 경제 전쟁이다. 길거리에 촛불 들고 나가 시위를 하고 혈서를 쓰고 분신을 해서 찾을 수 있는 해법은 없다.

우물 안 개구리식 사대 명분에 갇혀 병자호란을 불러들임으로써 백성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380여 년 전 인조(仁祖)의 조정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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