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驛)은 고대부터 동서양의 중요한 교통수단을 담당하던 장소다. 교통수단이라고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이곳에서는 역마를 갈아타기도 했고, 인마(人馬)와 마차(馬車)가 머무는 여관의 역할도 했다. 또 통신을 전달하는 일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조선 후기 공무로 급히 가는 사람이 타는 말을 파발마라 했는데, 역은 지친 파발마를 바꿔 타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기차가 들어오자 철마(鐵馬)라 불렀다. 옛날부터 말이 사람을 태어 나른다는 데서 유래한 탓이다. 나라의 재정에 관한 내용을 수록한 조선시대 ‘만기요람’에는 전국의 역마 수가 504군데 5천380필에 달한다고 했다. 교통수단으로서 역의 중요성을 잘 대변해주는 수치라 하겠다.

지금은 철도역으로 의미가 대폭 축소됐지만 60대에 접어든 기성세대한테는 그래도 기차역은 추억이 서린 정겨운 장소로 기억된다. 대중교통이 원활치 못하던 그 시절 우리지역의 역은 내 고장의 모든 관문 역할을 맡았다. 지금으로 말한다면 역과 고속터미널, 소규모 공항의 역할을 몽땅 담당한 장소다. 그 시절의 모든 만남과 이별은 이곳에서 이뤄졌다.

철도가 고속화되면서 우리 주변의 수많은 간이역들이 사라지고 있다. 중앙선 이설로 간신히 남았던 불국사역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야 할 운명에 처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18년 11월 1일 영업을 시작한 불국사역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조선시대 건축물로 지어져 코레일은 이를 철도기념물로 지정하고 있다.

2020년 신노선이 개통되면 철로 폐선으로 불가피하게 불국사역도 인적이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불국사역은 인근에 위치한 불국사와 석굴암 등을 찾는 관광객과 수학여행 학생들로 많이 붐벼 한 때는 전국 최고의 관광명소라고 이름을 날렸다. 관광도시 경주의 상징인 불국사역을 살리자는 2천여 주민의 건의서가 관계기관에 전달됐다고 한다. 많은 이들은 아직도 수학여행, 추억여행하면 경주 불국사를 손꼽는다. 낭만과 향수, 추억과 역사가 뒤엉킨 불국사역을 테마로 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좋을듯 하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