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일본이 소재를 무기로 한국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가늠하려는 간보기가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에 맞섰던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 만세운동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목숨 건 대한의 애국지사들이 한민족의 자존감을 세계만방에 알린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흘렀다. 우리는 한국전쟁과 전후 재건, 고도성장, 올림픽, 민주화운동, 외환위기 등 산재한 현안 해결에 골몰하느라 불과 36년 동안 일본이 뿌리내렸던 잔재들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거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밀레니얼세대들은 부모세대들과 달리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아닌 한 ‘국사(역사)’라는 과목은 말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과거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던 과정만큼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은 각 분야의 모든 계층과 계급이 치밀한 계획 하에 한반도에 사전 침투하여 바닥을 다진 다음에야 사후적으로 조약이라는 형식을 갖추어 공식화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조약 체결 시점 이전부터 이미 식민정책은 선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최근 일본이 수출 제한이라는 칼을 빼든 것도 그저 일본 총리의 즉흥적인 발언이라 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분명 한국이 보일 다양한 반응에 대해 사전시뮬레이션을 수없이 거친 후 시기와 범위 등을 결정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장 매출감소를 우려하는 일부 대기업들이야 과거처럼 정부가 나서서 정치적인 협상이나 양보를 통해 현재의 위기상황을 넘겼으면 하겠지만 앞으로 이러한 일이 다방면에 걸쳐 재발할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일본의 한 언론에서는 한국 내 일본 불매운동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논조를 피력하였다. 사상 최악의 한일관계였다는 지난 수년 간 한국이 정치나 역사문제로 일본을 기피하였으나 실제 한국인의 문화와 소비, 레저 등에서는 반대로 일본 붐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였다. 한국인의 일본방문은 2005년 174만 7천명에서 2018년 753만 9천명으로 늘어났다. 또한 2019년 상반기 수입차 중 일본차 비중은 21.5%였는데 이는 2015년의 2배 수준이다. 그리고 2017년 한국인 청년의 일본취업비중은 해외취업자중 약 29%에 이른다. 이외에도 한국 내 일본음식전문점이 늘어나고, 어패럴이나 일용잡화는 유니클로나 무인(無印)양품이 시장을 석권중이라 밝히고 있다. 실제 편의점에서 일본 주류, 과자, 커피 등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지금 세계는 ‘자유’와 ‘공정’보다는 ‘국익’을 최우선하는 경제 전쟁이 한참이다. 사드배치를 빌미로 한 중국의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의 여파가 여전한 가운데, 미국우선주의로 촉발된 미중간 무역전쟁도 현재진행형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전쟁에는 해당국 국민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엔 일본이 불씨를 지폈다. 어떠한 전쟁이건 승리를 위해서는 후방의 협력이 있어야만 한다. 경제전쟁에서 과연 우리의 경제체질과 구조가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받는 순간이 왔다. 후방의 국민들이 경제전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저 평소 생활습관에서 의식하지 않았던 의식주와 관련된 소비재의 선택에 조금만 유념해도 충분하다. 일례로 2018년 일본으로 여행했던 한국인이 가령 2박 3일 일정으로 60만원의 경비를 지출하였다면 이것을 국내여행으로 바꾸기만 해도 단순 계산으로 한일 양국에는 4.5조원이 각각 가감되는 효과를 발휘한다. 적어도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우리를 향한 일본의 작은 불씨조차 제대로 밟아 끄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떠한 경제전쟁에도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