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묵은 나무에 숨지 말라
천년 묵은 나무에 숨지 말라
  • 등록일 2019.07.14 20:14
  • 게재일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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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顔回)는 공자가 가장 아끼고 사랑한 제자입니다. 스승의 심부름으로 시장에 가보니 포목점 앞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3x8이 23전(錢)이라 주장하는 손님과 24전이라 말하는 주인간의 다툼입니다. 안회가 끼어들지만, 손님은 공자에게 가서 따지자며 내기를 걸어오지요. 손님은 내기에 지면 목숨을 내 놓기로 하고, 안회는 본인이 틀릴 리가 없다 생각해 머리에 쓴 관을 내 놓기로 합니다.

공자는 이야기를 다 듣더니 웃으며 말합니다. “안회야. 네가 졌으니 이 사람에게 관을 벗어 내주거라.”

안회는 스승이 늙고 우매해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지요. 다음 날 안회는 핑계를 대고 고향에 잠시 다녀와도 좋을지 묻습니다. 스승과의 결별을 생각하면서요. “급한 일을 처리하면 곧장 돌아오거라.” 공자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안회에게 건넵니다. 두 문장이 들어 있습니다. 千年古樹莫存身 殺人不明勿動手.

안회는 스승의 문장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며 천둥 번개가 치더니 후드득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멀리 큰 고목나무를 보며 한 걸음에 달립니다. 몸을 숨긴 안회는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문득 스승의 쪽지가 생각납니다. 주머니에서 문장을 꺼내 읽습니다. 千年古樹莫存身(천년고수막존신) 천년 묵은 나무에 몸을 숨기지 말라.

안회는 나무를 빠져나옵니다. 몇 걸음 옮기는 순간, 쾅! 굉음과 함께 벼락이 떨어져 고목나무를 반으로 갈라버립니다.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진 안회는 공포에 휩싸이지요. 생전 처음 벼락이 코앞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으니 그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더 큰 전율은 스승의 문장입니다. 만약 공자가 써 준 이 문장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지요.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걷는 내내 스승의 두 번째 문장이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殺人不明勿動手(살인부명물동수) 명확하지 않고서는 함부로 살인하지 말라.

‘내가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말인가?’ 안회는 벼락 맞은 충격과 살인에 관한 스승의 경고에 심란한 마음을 주체하기 어렵습니다. 집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3시. 세상 모두 잠든 깊은 밤입니다. 조용히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이상하지요. 침대에는 아내 홀로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집을 비운 탓에 아내는 딴 사내를 불러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안회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입니다.(내일 편지에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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