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대한민국이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에 빠졌다. 경제는 좀처럼 활기를 찾을 기미가 없고, 한반도 평화의 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맹점을 드러내며 허둥대던 외교는 드디어 일본의 무역보복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침략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사분오열의 파열음을 점점 더 키워가고 있는 국론은 더 참담하다. 나라가 망해도 권력만 잡겠다는 욕심에 찌든 정치권은 볼썽사나운 드잡이질만 벌인다. 국민은 도무지 기댈 언덕조차 없는 막막한 처지다.

문재인 정권이 마법의 주술처럼 되뇌던 소득주도성장의 ‘상징’ 최저임금 폭등세가 한풀 꺾였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87% 오른 시간당 8천590원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의 처참한 실정을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일 듯하다. ‘인하’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동결’까지는 했어야 옳았다는 이야기에 힘이 실린다.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펼쳐진 장면은 가히 역사적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만나 웃으며 사진을 찍었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왕따 모습의 문재인 대통령 모습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그게 어떤 형태든 만나는 일 자체를 시비하는 손가락질들은 온당치 못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트럼프는 어디까지나 트럼프 편이다. 이 유치한 명제를 대입해보면, 판문점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그리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국내외 호사가들은 판문점 촬영 쇼는 두 사람에게는 분명 ‘남는 장사’였다고 분석한다. 그런데도 왠지 ‘북한 비핵화’가 제자리걸음인 작금에, 앞질러 날아다니는 ‘종전선언’ 화두는 분명 선후(先後)가 뒤바뀐 난수표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요란한 평화잔치 분위기에 취해 우리의 안보는 확실히 좌표를 잃었다. 국방 전선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말하듯 우리는 스스로 무장해제를 해가고 있는데, 북한의 가공할 핵무기는 오히려 더 늘었다는 애타는 소식뿐이다.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평화’가 대체 언제까지‘모래 위의 성’ 양상이어야 하나 두렵기만 하다.

일본이 작정하고 무역보복을 감행해왔다. 우리가 무역을 ‘전쟁’이라고 일컬어온 세월이 길었으니 이건 분명 또 다른 형태의 왜란이다. 아베가 추악한 정치적 목적으로 일을 저질렀다느니 하는 치자들의 한가로운 해석은 참혹한 무역 전장에 도무지 효험이 있는 처방이 아니다. 일본의 무역보복이 민초들에게 또 얼마나 혹독한 빈곤을 몰고 올까 한걱정이 쌓인다.

민심을 흔드는 것은 일본의 야멸찬 보복공격 자체가 아니라, 뻔히 알았을 텐데도 마땅한 대응방안을 못 내놓는 정부·여당의 아둔한 태도다. 1차원적 ‘반일감정’에 기대어 어찌어찌 반전을 노려보려는 운동권 기질이 얼비치는 대목은 아연실색을 불러일으킨다. ‘적폐청산’ 편법으로 정적 때려잡는 일에 보여주던 능수능란들이 반만큼이라도 발휘됐으면 좋겠다.

아무렇거나,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민심의 향배다. 무구한 민심을 텃밭에 잡아 가두려는 정치꾼들의 선동술수들이 활개를 친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무책임한 선심 정책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민심은 또다시 흙탕물 와류에 휘말리기 직전이다. 찢어진 민심을 덧내는 여야 정치권의 온갖 험구들마저 경계가 없다.

트럼프의 재선을 아무리 담보한다 한들, 대한민국이 북한의 핵인질이 되는 일은 비극이다. 정치권은 지금 무조건 불황을 반전시킬 비책부터 찾아내야 한다. 방황하는 실직자들의 뒷주머니에 푼돈 질러주며 지지표나 구걸하는 걸 정치라고 말하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향 초나라의 노래들로 사기가 땅에 떨어진 군사들을 이끌고, 패장 항우(項羽)가 돌아갈 땅은 어디인가. 돌아갈 곳이 그 어디든 있기는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