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까운 분이 세상을 떠나신지 7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그분 계시던 곳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벼르기만 했지 정말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사람의 일생이 담긴 ‘유산’들을 정리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생각되어 결국 폐기 처분해야 할 것들을 시간을 내어 정리하기로 했다. 그 물건들은 생전에 그 분이 운영하던 공장 안과 공장 뜰에 가득 차 있었다. 보기에도 물건들은 무척 많아서 손이 몹시 많이 가야 할 것 같았다.

내 손은 보기는 뭉툭해서 막일 깨나 할 것 같지만 언젠가부터는 책이나 보고 글이나 썼던 터라 아무래도 다른 사람 손을 빌려야 했다. 폐기물 처리 업체도, 고물상도 여기저기 많아서 그중 한 곳에 우연히 들렀다가 인상 좋은 걸 믿고 맡겨 보기로 했다.

와서 보고는 한 이틀 걸리겠다고, 폐기물은 5톤짜리 한 차에 75만 원 해서 두 차, 여기에 쇠붙이나 비철 금속은 1킬로에 200원씩 쳐서 가져가겠다고 했다. 두 사람 쓰는 것까지 합쳐서 적당히 계산하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맡겨 놓았다 해서 모른 척 할 수는 없고, 그중에는 남겨 두어야 할 것도 있을 것 같아 내내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틀 걸리겠다던 것이 실제로 일을 시작해 보니 이틀 가지고는 어림 턱도 없었다. 이틀에 다시 이틀을 더하여 일을 하는데, 공장 안과 뜰에서 나오는 물건들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끝이 없을 것 같다는 말이 어울린다고 해야 했다.‘세상에는 이런 일도’ 같은 프로에 출연해도 좋겠다는 농담까지 하면서,‘자원 회사’ 사장님 부부 두 분에 일하는 분 두 분 합쳐 네 분에 지켜보는 나까지 다섯 사람이 산더미 같은 물건들을 나흘을 걸려 처분하는 일에 매달렸다.

나는 목디스크도 목디스크지만 사실 이런 일에 길 든 사람은 전혀 아니기에 옆에서 보다 딴청도 무척 피웠지만 일의 피로는 똑같이 느꼈다고 할 수 있었다. 1990년 정도에 팔린 브라더미싱 기계, 필시 복사본일 청전 이상범의 산수화 한 점, 1992년인가에 만들어진 삼성 완전 평면 티비 같은 것들이 나의 전리품이라면 전리품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지켜 본 내 주요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이 분이 남겨 놓은 물건들을 처분하는데 대한 가까운 다른 사람들과 나의 의견은 아주 달랐다. 나는 그분이 공장에서 손수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독창적’발명품들을 그냥 처분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살아생전에 식구들 고생만 시킨 그분의 지나친 발명욕의 소산들을 한시 바삐 없애 버리고 싶어 했다. 그 명품 기계들은 당신의 아이디어가 십 분 발휘되기는 했지만 상업적 이득을 남기지는 못한 현대 부적응증을 보여준 것들이었다. 나는 그 분의 노고가 담긴, 그러나 쓸모없는 기계들을 지키기 위해 물건들을 처분하는 공장을 나흘씩 지키고 섰던 것이었다.

결국 나는 그분의 발명품 기계들을 열 대 정도 지켜내기는 했다. 대신에 그 나흘 동안 내가 새삼스레 깨달은 것도 있다. 공장 안과 뜰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물건들, 그 대부분들은 폐기물, 즉 없애 버려야 할 것들이었다. 뭐랄까, 살아서 뭔가를 자꾸 모으고 쌓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

나흘 동안의 고생을 뒤로 하고 나는 당장부터는 모으지 않고 버리리라 생각했다. 내 것을 내 것 아닌 것으로 자꾸 밀어내야만 나랑 가까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할 테니 말이다. 평소에 많이 가졌다고 자부하던 그 책들부터 한시바삐 정리해야 하겠다. 책처럼 무겁고 처리하기 어려운 것도 없는데, 도대체 얼마나 살아 읽겠다고 그렇게 잔뜩 쌓아뒀단 말인가.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