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 중 하나인 검찰총장 인사청문회가 막을 내렸다. 정치권과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자 공중파 TV에서 생중계에 나섰다. 그러나 예전의 총리나 장관 청문회나 다를 바 없이 식상하고 실망스런 청문회였다. 여당은 그저 후보자를 감싸며 시간만 떼우려 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야당은 야당대로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기보다 후보자의 지난 과거 비리와 관련해 명확한 증거없이 의혹만 부풀리는 수준에 그쳤다. 겨우 한 건 했다는 것이 후보자의 위증논란이었다. 야권은 청문회장에서 공개된 2012년 기자와의 전화통화 녹취 내용과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발언이 다르다는 점을 들어 위증이라고 몰아세웠다. 윤 후보자는 “7년 전에 어떻게 이남석 변호사에게 이야기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며 “윤 검사가 형 사건에 개입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얘기를 한 건지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윤 후보자와 기자와의 통화 내용 자체에 대한 사실관계가 불분명하거나 사실이 아니라면 ‘위증’은 성립되기 어렵다고 한다. 설령 소개해줬다고 해도 단순한 소개만으로 변호사법위반에 걸리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이면 윤석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그만 넘어가야 하는 데,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사퇴를 촉구하고, 수사기관에다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안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국회가 청문보고서를 보내주지 않아도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을 강행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내년 총선을 앞둔 한국당 등 야당이 고집스레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않다. 옆에서 지켜보기 답답했을까. 홍준표 전 대표가 한마디 했다. 검사출신인 그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 때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한국당 의원들이 대거 고발된 점을 거론하며“엉뚱한 짓을 해 약을 잔뜩 올려놨다.

지금 임명되면 바로 (한국당 의원들은) 을(乙)이 돼 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회의원들이 출석을 거부한다고 기소를 못 할 것 같으냐. 조사 안 해도 기소할 수 있다”며 “동영상이 확보돼 있다. 참고인, 증인 조사를 한 뒤 법정 가서 따지라며 기소하면 당이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한국당 지도부의 대응 전략을 비판했다. 패스트트랙 관련 고소·고발로 현재 한국당 의원들이 대거 수사대상에 오른 상태에서 왜 검찰총수로 취임할 사람과 지나치게 각을 세우느냐는 충고다. 차라리 정치적 중립을 당부하는 게 나았다는 말이다.

청문대상자인 사람의 자질을 판단하는 인사청문회가 언젠가부터 후보자의 비리를 파헤치고 재산신고사항이나 주민등록법 위반여부, 논문중복게재 여부 등을 문제삼아 흠집내는 양상으로 변질됐다. 언제부터일까. 이는 ‘5·18민주화운동 청문회’가 ‘청문회 스타’를 만들고, 대통령과 총리를 배출하면서 불붙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있다. 5·18청문회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발포책임자를 가려내기 위한 청문회로서 청문위원들이 군부정권에 대해 공격적으로 진상을 밝히려는 차원이었기 때문에 자질을 판단하는 지금의 청문회와는 다른 성격이었던 게 사실이다. 어쨌든 그 이후 정치권에선 인사청문회를 인지도를 올리는 정치적 쇼로 활용하려는 양상이 늘어난 듯 하다.

또 하나 국민들이 인사청문회에 대해 실망하는 것은 국회 스스로가 인사검증을 제대로 하기 어렵도록 제도를 만들어놓은 채 상대방탓만 한다는 점이다. 예로 들면 국회 인사청문회는 정부가 인사청문안을 국회에 넘기면 20일이란 짧은 기간내 인사청문 절차를 마치도록 돼 있다. 이후 청문보고서를 송부하지 않아도 대통령은 10일 이내 기간을 정해 재송부요청을 한 뒤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이러니 여당은 시간떼우기나 하게 되고, 야당은 자질 검증보다 손쉬운 흠집내기에 골몰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인사청문회 문화, 정말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