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일방적 무역보복으로 시작된 한·일 통상마찰의 심각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 북한을 걸고 넘어졌고, 문재인 대통령은 “더 이상 막다른 길로 가지 말라”고 일본에 경고했다. 일본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기업들은 한시가 급한데, 대통령은 총수들을 불러 ‘장기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일 통상마찰은 교졸한 ‘포퓰리즘’으로 넘길 수 있는 국내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본의 권력과 여론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을 장만해야만 비로소 풀릴 개연성이 생긴다.

무역전쟁을 시작한 일본의 질주는 거침이 없다. 일본의 최대 공영방송인 NHK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 관계자가 한국이 사린가스 원료를 북한에 넘길 수 있다는 엉뚱한 얘기를 쏟아냈다고 한다. 수출규제 품목을 공작기계와 화학제품으로 확대할 움직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일본이 주요 부품·소재의 수출대상국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면 한국의 주요산업이 올 스톱될 수도 있다.

일본이 한국에 쓸 수 있는 보복조치에 비하면 한국이 일본에 가할 수 있는 보복수단은 중과부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일본의 조치에 ‘상응한 대응’을 재차 언급해 ‘강대강’ 대립 가능성마저 시사했다. 특히나 아베 정권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무역보복을 하고 있다는 한가로운 시사해설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될 접근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을 정직하게 인식하는 것이 순서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 일본 수산물 수입 불허,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으로 축적된 불만이 밖으로 표출된 결과다. 문재인 정권이 일본을 인기영합주의의 먹잇감으로 쓴 사례는 적지 않다. 국회의장까지 나서서 일왕을 공격하는 포퓰리즘을 써먹었다. 역지사지하여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한일 갈등의 원인 제공자는 한국정부일 수도 있다.

대일외교를 험악하게 이끌어온 정책 이면에는 ‘대안’이 분명해야 맞다. 그런데 막상 상황이 벌어지자 문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애먼 기업인들이나 불러서 닦달하는 수준이라니 말이 되나. 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 폭증이 몰고 온 혹독한 경제난에 일본의 경제보복까지 겹치고 있는 판인데, 정부·여당의 대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반일감정’을 들쑤시는 일부 진보 민심의 만용이다. 치가 떨리는 일본의 야비한 행태를 두둔할 이유는 추호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냉정한 이성과 철두철미한 지략을 동원해 난국 해결의 매듭을 찾아내야 한다. 새를 때려서 노래하게 할 비법이란 세상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