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일간지 기자가 구씨의 회사를 찾아갑니다. 68년에 아주머니 두 분과 세운 삼구가 5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묻습니다. “책임대표사원 만나러 오셨지요?” 멀리서 구씨가 달려나와 기자의 손을 맞잡습니다. “아이구. 뭐하러 이런 구멍가게까지 찾아오셨어요!” 구씨가 건네는 명함에도 책임대표사원 여섯 글자가 선명합니다. “수많은 회사를 취재하지만 이런 직함은 낯설어요. 무슨 의미가 있나요?” 구씨가 답하지요. “회사의 모든 것을, 사원들의 잘못까지 책임지겠다는 의미에요. 작은 회사에 회장이란 칭호는 어울리지도 않고요. 직원들은 호칭이 너무 길어 그냥 책임사원! 이라고 부릅니다.”

구멍가게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삼구 Inc의 직원은 모두 2만 5천명에 이릅니다. 335개 회사, 1357개 사업장에 직원을 파견하는 아웃소싱 국내 최대업체의 회장입니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매출은 1조원을 돌파할 예정입니다.

사무실에 액자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노요지마력(路遙知馬力) 일구견인심(日久見人心). 명심보감 교우편에 나오는 귀절이에요.” 구자관(74세) 책임대표사원이 설명하지요. “말의 힘을 알려면 먼 길을 가 봐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보려면 오래 사귀어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자가 묻습니다. “자살 직전까지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회사를 만드셨습니까?” “사람이지요. 남들이 꺼리는 일을 기꺼이 해 주시는 그분들 덕분입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청소하는 아줌마, 아저씨도 여사님, 선생님이라고 깎듯이 불러요. 모든 직원은 명함을 파 드립니다. 회사 주식의 47%를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줬습니다. 제 가족은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친척이 회사에 기여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임원들도 100% 공채 출신입니다.”눈물겹게 어렵던 시절, 한 달 차비를 아껴 책 한 권씩 사 모으며 고전의 한 문장을 가슴에 새긴 결과입니다. 사무실에 걸린 액자의 명심보감 글귀는 그의 평생을 견인했습니다.

언어에는 3가지 힘이 있습니다. 각인력. 견인력. 창조력. 우리에게 스며든 언어가 결국 우리 인생을 이끌고 갈 것입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말합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거미는 자기 몸에서 나오는 거미줄로 집을 짓고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언어로 존재의 집을 짓는다.” 아름답고 훌륭한 언어의 세계에 풍덩 빠져, 내 인생을 견인할 문장을 만나 전율하는 그대의 하루시기를!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