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경북의 멋과 맛을 찾아서
뱀장어는 가물치와 교미해 알을 낳는다?

마치 꽃처럼 핀다는 갯장어 샤브샤브.

장어(長魚)는 미끄럽다. 맨손으로 잡으면 미끈거리며 빠져나간다. 정체를 알기도 힘들다. 장어의 정체를 비교적 정확하게 이야기한 것은 손암 정약전(1758~1816년)의 ‘자산어보(玆山魚譜)’다. 장어를 ‘해만리’라고 표기했다. 정확하게는 뱀장어, 민물장어다.

“큰놈은 길이가 1장(丈)에 이르며, 모양은 뱀을 닮았다. 덩치는 크지만, 몸이 작달막한 편이고 빛깔은 거무스름하다. 대체로 물고기는 물에서 나오면 달리지 못하지만, 해만리만은 유독 뱀과 같이 잘 달린다.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제대로 다룰 수가 없다. 맛이 달콤하고 짙으며 사람에게 이롭다. 오랫동안 설사를 하는 사람은 이 물고기로 죽을 끓여 먹으면 낫는다.”

해만리는 바닷장어 혹은 민물장어다. 일본인들이 ‘우나기(UNAGI)’라고 부른다. 뱀장어는 이름도 혼란스럽다. 뱀같이 생겼다고 뱀장어 혹은 ‘배암장어’다. 몸이 길다. 장어(長魚)다. 뱀장어의 준말이다. 바다에 나타나니 바닷장어다. 강이나 개울 등 민물에서도 발견되니 민물장어다. 같은 녀석이다. 뱀장어가 바다, 민물에서 동시에 발견되니 어쩔 수 없다.

장어는 크게 세 종류다. 민물장어, 갯장어, 붕장어다. 여기에 먹장어(꼼장어, 곰장어)를 더하면 모두 넷이다. 모두 장어 혹은 뱀장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손질한 뱀장어(민물장어).
손질한 뱀장어(민물장어).

갯장어는 견아리에서 비롯되었다. ‘견’은 개, ‘아’는 이빨, ‘리’는 장어다. 개 이빨을 가진 장어다. 개 이빨 장어, 개장어, 갯장어다. ‘자산어보’에서는 “입이 툭 튀어나온 것이 돼지와 같다. 또 이는 개와 같아서 고르지 못하다. 가시가 매우 단단하며 사람을 잘 문다”라고 했다. 갯장어 명산지인 여수 일대에서 갯장어를 만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에 갯장어에게 물린 자국이 있다. 갯장어를 이르는 ‘하모’는 일본어 ‘hamu(‘물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하모 유비키’는 갯장어 샤브샤브의 일본어 표기다.

‘자산어보’에서는 붕장어를 해대리라고 했다. 설명도 사실적이고 정확하다. “눈이 크고 배 안이 먹빛이다. 맛이 매우 좋다.” 붕장어는 일본인들이 ‘아나고(ANAGO)’라고 부른다. 가격이 오르면서 회와 더불어 구이용으로도 널리 사용된다. 일본인들의 ‘우나기동(장어 덮밥)’은 ‘우나기’가 아니라 붕장어(아나고)로 만든다. 민물장어(우나기)의 가격을 생각하면 민물장어로 ‘우나기동’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헛갈리는 녀석은 먹장어다. 먹장어는 이름은 장어지만 장어는 아니다. 흔히 ‘꼼장어’ ‘곰장어’라고 부른다. 먹장어 목, 먹장어 과의 동물로 연골어류다. 장어치고는 길이가 짧고 통통하다. 가격이 싸서 한때 포장마차의 주력 메뉴였다. 곰장어 인기가 높으니 붕장어(아나고)를 내놓으며 ‘곰장어’라고 소개하는 일도 더러 있다. ‘꼼장어 숯불구이’는 먹장어다.

장어를 상세하게 나눈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손암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쓴 시기는 19세기 초반(1814년)이다. ‘자산어보’에서도 민간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전한다. “뱀장어는 그믐밤에 자신의 그림자를 가물치의 지느러미에 비추고 그곳에 알을 낳는다. 뱀장어는 가물치와 교미하여 알을 낳고 수정한다.” 손암은, “민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으나 믿을 수 없다”라고 적었다.

 

민물장어 구이.
민물장어 구이.

동시대,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 중이었던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장어에 대한 서정적인 기록을 남겼다. ‘다산시문집_제4권_시’의 일부인 ‘탐진어가(耽津漁歌)’다. 탐진은 전남 강진의 옛 이름이다.

“계량(桂浪)에 봄이 들면 뱀장어 물때 좋아/그를 잡으러 활배가 푸른 물결 헤쳐간다/높새바람 불어오면 일제히 나갔다가/마파람 세게 불면 그때가 올 때라네(후략)”

활배는 궁선(弓船)이다. 배에 그물을 설치한 배를 이른다. 형 손암은 흑산도에서, 동생 다산은 강진에서 유배 중이었다. 형 손암이 ‘자산어보’를 기록하고 있는 동안 동생은 뱀장어에 대한 시를 남겼다. 이 뱀장어가 어떤 종류인지는 알 수 없다.

조선 시대, 뱀장어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한 이유가 있다. 뱀장어의 산란, 수정, 성장을 꼼꼼히 볼 수가 없었다. 산란 현장을 보지 못했다. “가물치와 교미하여 알을 낳고 수정한다”는 엉뚱한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만 뱀장어의 정체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뱀장어의 번식 과정을 부분적이나마 알게 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27년 2월 발행한 잡지 ‘동광’ 제10호의 기사다. 제목은 ‘뱀장어와 잉어’.

“(전략)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지하면 남아메리까에 살(居)는 뱀장어는 알을 쓸을 때가 되면 대서양을 건느어서 스코틀랜드나 혹은 알프스산 꼭닥이에 오아서 새끼를 깐다고 한다. 그 까지 찾아가는 동안에 세월이 걸닌다거나 사납은 짐승, 넘끼 힘 장애가 있다거나 생각하지 않고 오직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아니 가고는 말지 않는다는 맘으로 (후략)”

 

갯장어 회.
갯장어 회.

제법 과학적으로(?) 기술했지만, 이 내용도 틀렸다. 1920년대, 덴마크를 비롯하여 유럽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뱀장어는 무려 6,000㎞를 헤엄쳐서 깊은 바다의 산란지에 간 다음, 알을 낳고 죽는다”. 뱀장어는 민물에서 바다로 가서 알을 낳는다. 윗글에는 바다의 뱀장어들이 민물로 온 다음, 엉뚱하게도 알프스 꼭대기에서 알을 낳고 번식한다고 말한다. 거꾸로다. 연어는 깊은 바다에서 살다가 민물로 올라와서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대부분의 회귀성 생선들이 그러하다. 뱀장어는 정반대다. 민물에서 살다가 바다로 돌아가서 산란하고 죽는다.

아시아에서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뱀장어의 대체적인 삶’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밝혔다. 동북아시아의 민물장어들은 먹이도 먹지 않고, 쉬지 않고 3,000㎞를 헤엄쳐서 산란지에 도착한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산란 후 삶을 마감한다. 산란지역은 필리핀 마리아나 해구 부근이다. 알에서 깨어난 뱀장어는 ‘댓잎장어’다. 생긴 모습이 대나무 잎 혹은 버들잎 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확한 명칭은 렙토세팔루스(leptocephalus). 댓잎장어는 실뱀장어로 바뀌면서 어미가 왔던 길을 되돌아, 육지로 향한다. 이때 어부들이 실뱀장어(실치)를 잡아서 양식장에서 기른다. 실뱀장어는 ‘유리뱀장어(glass eel)’로 부른다. 몸이 투명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민물장어는 양식이다. 실뱀장어를 잡아서 기른다. 일본도 알 채취, 수정, 양식의 전 과정을 ‘산업적’으로 해내지 못했다. 뱀장어와 뱀장어 인공양식에 대해서 일본이 한걸음 앞선 이유가 있다. 일본인들은 오래 전부터 뱀장어를 즐겨 먹었다. 조선 중기 문신 남용익(1628∼1692년)은 조선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갔다. 그는 ‘문견별록’에서 일본인들이 뱀장어구이를 귀하게 여긴다고 기록했다.

“(전략) 회는 아주 굵고 굳은데 감귤을 조각조각 끊어 섞었고, 구이[炙]는 생선이나 새[鳥]로 하는데 뱀장어[蛇長魚 사장어]를 제일로 친다. 먹는 대로 가반(加飯)하고 잇따라 반찬이 나와, 많을 때는 열 두어 그릇이나 되고 반드시 즐기는 물건을 물어보아 더 내오며, (후략)”

‘사장어(蛇長魚)’는 뱀장어다. 남용익이 기술한 뱀장어가 과연 어떤 장어인지는 알 수가 없다. 뱀장어(민물장어), 붕장어, 갯장어 중 어느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일본인들이 이미 17세기 중반에 뱀장어구이를 즐겨 먹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우리도 뱀장어를 먹었다. 매천 황현(1855∼1910년) ‘매천속집’의 ‘밀양 효자 박기재’ 이야기다. 박기재의 할머니가 풍진을 앓았는데 의원이 뱀장어가 좋다고 했다. 한겨울에 뱀장어를 구할 도리가 없어 박기재가 얼음을 손으로 긁고 있는데 갑자기 얼음이 갈라져 뱀장어가 나타났다. 그 뱀장어를 올리니 할머니의 병이 나았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밀양 효자 박기재’의 뱀장어는 민물장어다. 겨울철, 손으로 긁어야 할 정도의 얼음은 개울이나 강이다. 박기재의 장어는 민물장어다. 무태장어, 갯벌장어 등도 있다. 무태장어는 제주도 산 민물장어(뱀장어)다. 갯벌장어는 양식한 뱀장어를 갯벌에 일정 기간 풀어둔 것을 말한다. 양식 뱀장어와 큰 차이는 없다.

 

영일만검은돌장어영어조합법인 김영운 회장.
영일만검은돌장어영어조합법인 김영운 회장.

포항 검은돌장어 축제
26~28일까지 개최
도구해수욕장 일원

돌장어는 포항 구룡포(포항시 동해면 흥환리) ‘검은 돌장어 마을’의 특미다. ‘돌장어’는 구룡포 언저리 검은 바위, 돌이 많은 곳에서 자란다. 이 지역은 물이 차고, 물살이 세다. ‘검은 돌장어’의 색깔이 검고, 맛이 찰진 이유다. ‘영일만검은돌장어영어조합법인(회장 김영운)’은 매년 ‘검은돌장어 축제’를 연다.

올해는 도구해수욕장 일대에서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검은돌장어 축제’에서는 여러 종류의 돌장어 음식을 시식할 수 있고, 전문가들이 개발한 레시피도 배울 수 있다. 특히 후릿그물을 당기며 ‘맨손으로 검은 돌장어 잡기’는 짜릿한 손맛을 만끽하는 축제의 색다른 체험이 될 것이다.

영일만검은돌장어축제/마을: 포항시 남구 동해면 흥환리/회장: 김영운(영일만검은돌장어영어조합법인)/행사일시: 7월26일(금)~7월28일(일)/장소: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해수욕장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